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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청춘의독서/유시민 지음/웅진지식하우스/2009년 초판, 2014년

 

민주화운동가, 칼럼니스트, 방송인, 정당인, 국회위원, 장관, 그리고 지금은 글을 읽고 쓰는 사람.

스스로의 표현대로라면 유용한 정보를 흥미롭게 조리해 평범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지식 소매상>

나는 이 사람의 오랜 팬이다.

사람들이 그의 진면목을 <썰전>이나 <알쓸신잡>을 통해 알아주기도 전,

지금은 지탄받은 동아일보의 칼럼니스터 였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의 쉬운면서도 명쾌한 논리가 좋았고,

박학다식한 지성을 사랑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으로 또 장관으로 일하면서 칭찬보다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때도

나는 묵묵히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 분을 정당하게 평가해줄거야. 믿고 기다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썰전>이나 <알쓸신잡>을 통해 열광해줄 때 비로소 가치받는 듯 하여

괜히 뿌듯했다.


그럼에도 이 분이 쓴 책은 거의 읽지 못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등 읽은 책 보다는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많다.(그러고도 팬이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이 분이 하는 일에 무조건 지지? 면 팬의 조건이 안되려나???)


청춘의 독서는 십 년전에 나온 책이다.

이제 갓 세상에 나가 길을 찾는 딸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기서 언급한 책은 대대수가 이 분이 젊은 시절(20대)에 읽은 책이다.

가히 천재 소리를 들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언급한 책을 적어보면

<죄와 벌> <전환 시대의 논리> <공산단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 <맹자>

<광장> <사기>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불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다. 


 

 

45쪽

기자는 수습 또는 견습이라는 '미완성'의 자격으로서도 출입처에 나가면 위로는 대통령, 장관, 국희위원, 은행 총재로부터 아래로는 국장, 부장, 과장들과 동격으로 행사하게 된다. 그들이 취재 대상의 하부층과 접축하는 기회는 오히려 드물다. 장관이나 정치인이나 사장, 총재들과 팔장을 끼고 청춘각이나 옥류장이나 조선호텔 무슨 라운지니 하면서 기생을 옆에 끼고 흥청댈 때, 그 기자는 일금 1만 8000원 또는 고작해서 일금 3만 2000원이 적힌 사내 사령장을 그날 아침 사장에게서 받을 때의 울상을 잊고 만다.

점심은 대통령 초대의 주식, 그것이 끝나면 은행 총재의 벤츠차에 같이 타고 무슨 각의 기생 파티에서 최신 유행의 트로트 춤을 자랑하고 이튿날 아침은 총리니 국회읜장의 "자네만 오게"라는 전화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참석하는 꿈이 남아 있다. 이런 기회는,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지만 출입처에 나간다는 기자에게는 반드시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거나 돼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기자도 얼마쯤 혼탁한 물에서 헤엄치다 보면 의식이 달라진다. 면역이 된다. 여러 해가 걸리는 것이 아니다. 어제 스습기자로서 선배 기자들과 무력과 타락과 민중에 대한 배반을 소리 높이 규탄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골프는 사치가 아니야. 건전한 국민 오락이야' 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다. 여기서부터 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은 지배 계급긔 그것으로의 동화 과정을 걷는다..... 모든 것이 '가진 자'의 취미와 입장에서 취재되고 기사화된다. '지배하는 자'의 이해와 취미에서 신문은 꾸며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진 자와 지배하는 자는 대연각의 은밀한 방에서 나오면서 이 기자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린다. "역시 이완용 기자가 최고야. 홍경래 기자는 통 말을 알아듣지 못한단 말이야." 그러고는 득의만면해서 돌아서는 이완용 기자의 등 뒤에서 눈을 가늘게 하여 회심의 웃음을 짓는다.

국민의 소시민화, 백성의 우민화, 대중의 오도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비난이 적적으로 옮다고는 할 수 ㅇ벗지만 전적으로 부인할 용기를 가진 기자가 몇 사람이나 될지 의심스럽다.(전환시대의 논리 중에서)


<공산당 선언>은 포악한 권력의 무자비한 압제와 넘어설 수 없는 절대 빈곤의 장벽에 절망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무거운 현실에 짓눌려 숨이 넘어가는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생기를 불어넣는다. 억압과 차별을 처례하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단지 자기 자신의 행복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하고 역사와 문명의 승리를 앞당기는 거룩한 행위가 된다는 신념은 그 얼마나 매력적인가!

<공산당 선언>은 포악한 권력의 무자비한 압제와 넘어설 수 없는 절대 빈곤의 장벽에 절망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무거운 현실에 짓눌려 숨이 넘어가는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생기를 불어넣는다. 억압과 차별을 처례하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단지 자기 자신의 행복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하고 역사와 문명의 승리를 앞당기는 거룩한 행위가 된다는 신념은 그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글을 쓰는 중에 김대중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다. 2009년 월 18일이다. 네 차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매번 공산주의자라는 모함과 비방을 들었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자기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전과 지도력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이 위대한 정치인의 명복을 빈다. 자칭 보수 정치 세력과 그들과 동맹한 족벌 신문들이 '친북 좌파'라는 괴상한 용어를 쓰지 않고 그의 삶과 정치 역정을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은 나는 처음 보았다. 그가 일생 동안 견지했던 중도 개혁의 정치 노선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갖가지 오해와 비방을 넘어 정당한 평가를 받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121쪽

맹자는 현실에서 철저히 실패한 지식인이었다. 법가와 합종연횡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군주에게 부국강병의 비결을 제시함으로써 크고 작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기회를 누렸지만 맹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전국시대 그 많은 지식인들 가운데 맹자만큼 오래 살아남은 지식인은 달리 없다. 제자들의 그의 언행을 기록한 책 <맹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은 남기는 자가 역사에서 승리한다는 격언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14권 7책으로 이루어진 <맹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지식인 맹자의 사상을 세상에 남겼다.



127쪽

맹자는 묵자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선한 본성이 가까운 혈육에서 시작해 타인에게도 퍼져나간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것은 보편적 사랑을 역설한 묵자의 겸애사상을 비판하는 데 효과가 있는 논리였다. 찰스 다위 이래 생물학자들이 발견한 인간의 본능과 행동 양식에 비우처보면 맹자가 옳았다. 인간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 동물이다. 인간이 하는 이타 행동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유전적 근친성이다. 그리고 사회를 만들어 생활하는 과정에서 협동정신과 타임에 대한 배려,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 같은 '사회적 재능'을 진화시켜왔다. 이타 행동이라는 인간의 사회적 재능은 먼저 유전적 근친성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표출되어 낮은 사람에게도 확장된다.


220쪽

<공산당 선엄>을 읽고 가슴이 설레는 젊은이라면 반드시 다윈을 읽어야 한다. 세상이 원래 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인데 국가가 무엇 때문에 빈부 격차 해소나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역시 다윈을 제대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본성을 버리지 못하지만 동시에 이타 행동을 우러러보는 직관적 도덕률을 지닌 동물이다. 인간은 또한 밤하늘의 별을 볼 때에도 땅에 발을 디뎌야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현실의 이해타산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결한 이상주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이 너무 비천한 것 같다. 누구나 다위만큼씩만 인간에 연민을 느끼고, 이타주의에 공감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224쪽

베블런에 따르면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돈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경쟁심 때문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해 소비함으로써 만족을 얻는 데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돈을 버는 목적이다. 돈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267쪽

다시 헨리 조지를 읽으면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 진리가 아름다운 것은 그걸 실현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일지도 몰라. 행하기 쉬운 진리에는 매력이 없는 거야. 그러니까 '근본적 변화'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그 자체가 멋지기도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진리의 벗'들, 그들의 몸부림이 아름다워서일지 몰라.


311쪽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E. H. 카 선생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 것이다. 그는 내게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의 기적을 일으켰고, 어느 정도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었겠지만, 그의 영향을 받았던 실제의 내 삶에 나는 불만이 없다.


이번에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그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지쳤다. 존경했던 이들은 먼 곳으러 떠났고, 사랑하는 동료들은 시대의 삭풍에 떨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으나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몰라 번민하다. 내가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를 외면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걷는 사람들과도 손을 잡기가 어렵다. 가끔 나는 내 자신이 물 밖으로 팽개쳐진 물고기 같다고 느낀다.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잘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나에게 친숙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 머무르고 싶다. 그런 나를 선생은 따뜻하게 격려해준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 믿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의 격려를 받아들여야 할까?


 

자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