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16년 10월 14일 1판 1쇄 펴냈다.
내가 읽은 책은 1판 11쇄로 올해 3월 23일날 나온 책이고,
바로 일주일 전인 지난 6월 4주째 교보문고 집계에는 이 책이 <언어의 온도>에 이어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했다고 나와 있다.
오랜만에 최신간을 읽은 셈이다.
아이 지도용 쉬운 그림책을 찾으러 학교도서관에 갔다가
지난 4월 새로 들어온 교사용 신간도서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동안 인문학 서적 위주의 독서를 한 탓에
모처럼 보는 소설책이 반갑기도 했다.
책은 모두 190쪽,
비교적 짧아서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영부인 문정숙 여사님이 기자들에게 선물한 책이라고 딸이 말해주었다.
맨 앞부분부터 상당히 흡인력있게 전개되어 단숨에 읽어버렸다.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여성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들어와 있는 남성중심문화를 비판하고 있었다.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처럼 <어쩌면 간혹 미치는 것이 그 해법이 아닐까?>
소설 속 내용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은 나 역시 남성중심문화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김지영 씨 어머니처럼 오빠나 동생의 더 나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본인의 학업을 포기하고
열악한 산업전선에서 뛰었던
이 땅의 수많은 언니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김지영처럼 구직난이 심각하던 해에 태어나지 않은 것,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보장되는 교대에 다닌 것은
분명 김지영 씨보다 나은 조건이다.
대신 나는 김지영처럼 단 한 명의 아이를 낳아서 키운 것이 아니라
3명을 낳아서 키운 것,
지금처럼 탁아나 육아에 정부정책이 반영되기 전이어서
맞벌이의 어려움이 김지영이보다 몇 배가 컸다는 것....
그래서 생활이 아닌 생존의 날들이 너무나 길었다는 것은
분명 김지영 씨보다 엄청나게 불리한 시절에
이땅의 여성으로서 살아낸 것이다.
간혹 다 자라버린 세 아이를 보노라면
그 시절을 힘겹게 살아낸 내가 너무 대견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정도.........
그 와중에 김지영 씨처럼 미치고 싶었으나
딸린 세 아이 때문에 차마 미칠 수도 없었던
울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슈퍼우먼이 되어 가정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또 다른 김지영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34쪽_ 이 부분은 주변에서 이런 친구를 많이 봐서 그런지 김지영 씨의 어머니 오미숙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김지영 씨의 어머니 오미숙 씨에게는 위로 오빠가 둘, 언니가 하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자라면서 모두 고향을 떠났다. 외가는 대대로 벼농사를 지으며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전통적인 농업 국가이던 한국은 빠르게 산업화되었고, 예전처럼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 수 없게 되었다. 외할아버니는 당시 농촌의 부모들이 대부분 그랬듯 자식들을 일단 도시로 보냇다. 그렇다고 그 많은 자식들이 모두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뒷바라지할 형편은 되지 않았다. 도시의 집값도 생활비는 비쌌고, 학비는 더 비쌌다.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다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돌아왔다. 두 살 많은 이모는 이미 상경해 방직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미니도 같은 공장에 취직해 언니와 공장 언니 둘과 함께 두 평 남짓 벌집방에서 살게 되었다. 공장 동료들은 거의 또래의 여자아이들이었다. 나이도, 배움도, 집안 사정도 비슷비슷했다. 어린 여공들은 직장 생활이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일만 했다. 방직기계가 내뿜는 열기 때문에 덥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고, 안 그래도 짧은 스커트를 최대한 걷오 올리고 일을 해도 팔꿈치와 허벅지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부옇게 먼지가 날려 폐병을 얻는 이들도 많았다. 잠깨는 약을 수시로 삼켜 가며 누런 얼굴로 밤낮없이 일해서 받은 터무니없이 적은 돈은 대부분 오빠나 남동생들의 학비로 쓰였다.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딸들은 기꺼이 남자 형제들을 뒷바라지 했다.
큰외삼촌은 지역의 국립 의대를 나와 모교 대학 병원에서 평생 일했고, 작은 외삼촌은 경찰서장으로 은퇴했다. 어머니는 오빠들이 성실하고 반듯하고 공부를 잘하는 게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 공장의 친구들에게도 자랑을 많이 했는데, 그 자랑스러운 오빠들이 경제력을 갖게 되자 막내 외삼촌을 뒷바라지했다. 덕분에 막내 외삼촌은 서울에 있는 사범대학을 다닐 수 있었고, 큰외삼촌은 집안을 일으키고 가족을 부양한 책임감 있는 장남이라고 칭찬받았다. 그제야 어머니와 이모는 사랑하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는 자신들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뒤늦게 산업체 부설 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어머니는 또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막내 외삼촌이 고등학교 교사가 되던 해에 어머니는 고졸이 되었다.
98쪽
출산한 여성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2003년에 20퍼센트를, 29년에야 절반을 넘었고 여전히 열 명 중 네 명은 육아휴직 없이 일하고 있다. 물론 그 이전, 결혼과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이미 직장을 그만두어 육아휴직 통계 표본에도 들어가지 못한 여성들도 많다. 또 2006년에 10.22퍼센트던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꾸준히 그러나 근소하게 증가해 2014년에 18.37퍼센트가 되었다. 아직 열 명 중 두 명도 되지 않는다.
108쪽
깜깜해진 하늘 위로 공평한 선물처럼 드문드문 일정하게 눈이 내렸고, 바람이 한 번씩 두서없이 불면 눈송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남자 친구가 떨어지는 눈송이를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이리저리 팔을 뻗었는데 눈송이는 매번 아슬아슬 비켜 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얼핏 육각형 모양이 살아 있는 커다란 눈송이가 남자 친구의 검지 끝에 살며시 앉았고, 김지영 씨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너 회사 잘 다니게 해 달라고,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사회생활 잘하고, 무사히 월급 받아서 나 맛있는 거 많이 사 달라고."
김지영 시는 가슴속에 눈송이들이 성기에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충만한데 헛헛하고 포근하데 서늘하다. 남자친구의 말처럼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어머니의 말처럼 막 나대명서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119쪽
안 그래도 김지영 씨는 졸업반이 되어 취업 준비를 시작한 남자 친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같은 상황일 때,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손끝이 저리도록 애틋했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일상도 전쟁이었고, 긴장을 놓으면 당장 피투성이가 될 순간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124쪽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월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월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혔다.
145쪽
첫 직장이었다. 첫발을 내딛은 세상이었다. 사회는 정글이고, 학교 졸업 후 만난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들 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합리보다 불합리가 많고, 한 일에 비하면 보상도 부족한 회사였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앟는 개인이 되고 보니 든든한 방패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도 좋은 사람이 더 많았다. 비슷한 관심사와 취향을 가져서인지 학창 시절 친구들보다 오히려 마음도 잘 맞았다.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세상에 큰 목소리르 내는 일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도 아니었지만 김지영 씨에게는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고 진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내 수입으로 내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 보람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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