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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창훈 연작소설/한겨레출판/2017년/175쪽

이 소설은 2017. 올해의 책을 읽자!

전남 도립도서관이 선정한 5권의 책 중 한 권이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나를 중심으로 한 열 명의 교사가 이 곳에 신청서를 작성하여 보냈고,

3권의 책을 보내줬는데 그 중 한 권이다.

읽다가 잠시 중단한 <다시, 책은 도끼다>가 있고,

다음주 연수가는데 과제로 주어진 <자존감 수업> 책도 읽어야 하건만

소설 좋아하는 사람답게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다.


일단 이 책은 술술 잘 읽혔다.

하룻밤새 다 읽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또 생각꺼리가 많은 소설이다.

잘 알다시피 작가 한창훈은 그의 고향 거문도에서 터잡고 사는 소설가다.

여수에서 3년간 근무했지만 거문도를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거문도는 물론, 동도, 서도까지 근무하다 온 적이 있기에

간혹은 가 본 것처럼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ㅎㅎ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누구나 하루하루 행복해지기를 꿈꾸면서 하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이라는 말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연작소설로 이루어진 이 책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맨 뒤의 대화글에 이 말이 있다.


"행복이란 게 실체가 없는 거란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단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가 행복했구나' 정도밖에 없잖아요?"


결국 하루 하루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주어진 작은 일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 것,

그리고 이야기 속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에서 처럼 남의 말에 귀기울일 것.

환상의 섬에 있는 유일한 규칙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처럼 사람을 존중한 것.


정권이 바뀌고 따뜻하고 정감있는 뉴스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에게 시혜라고 베풀듯이 근래 보기드문 훈훈한 뉴스들이 정치기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창훈 소설가가 꿈꾸는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는 말이 새로 정치인의 옷을 사람들이 명심했으면 좋겠다. 잠시 걸친 옷걸이의 옷을 자기 옷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래본다.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어서 따로 옮겨적기가 힘들지만, 이 소설의 주제가 나와있는 맨 뒷부분의 대화를 옮겨 적어본다.


166쪽


기자는 예전 자신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커다란 예식장, 수많은 하객, 넘쳐나는 음식, 화려한 장식과 장엄한 연주, 그리고 어떻게 살라는 덕담과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쿠니의 결혼식은 초라할 정도였다. 차려놓은 음식도 몇 가지의 과자와 음료, 국수뿐이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다. 

"행복하게 사세요."

그러나 행복이라는 단어가 정작 기자 자신에게는 공허하게 들렸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피곤해 보이시네요."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죠, 요즘도 부인이랑 불편하세요?"

쿠니는 기자의 고백을 기억하고 있었다.


2년 전 그는 '쿠니의 대화하는 집'전신인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취재하러 찾아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놓았던 적이 있었다. 회식 때문에 늦었는데 화를 내는, 상사의 강압과 취재원을 찾아 도시를 뛰어다녀야 하는 피곤과 동료와의 경쟁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해도 듣지 않는 아내에 대해, 그리고

"당신은 일방적으로 설득만 하려고 해. 그게 무슨 대화야?"

"맞아, 나는 당신을 설득하고 싶어. 이해받고 싶단 말이야."

"지겨워, 듣기 싫어."

이런 대화들까지 말했고 자신이 생각한 결혼은 이게 아니었으며 사랑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괴로운 마음만 가득하다고 덧붙였다. 그때 쿠니는 자신의 가게 이름대로 듣기만 했다. 털어놓고 나자 마음 한쪽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약간 머뭇거리다가 돈을 두고 일어섰던 것이다. 


"뭐, 큰 차이 없이 지내는 중이죠."

쿠니는 잠깐 기다리라는 신호를 하고는 칵테일 잔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그것은 이야기해보라는 뜻이었다.

"참 혼란스러워요. 어릴 때부터 전 늘 준비하면서 살았어요. 준비를 해야 행복해진다고 배워서. 그래서 그런지 행복한 순간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오늘 있었던 일과 살아온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덧붙였다. 듣고 난 쿠니가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우리가 살던 화산섬에는 행복이라는 말이 없었어요. 그러니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기자가 들었다.

"이곳에 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죠. 그 사라밍 보고 싶고 만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아마 그런 걸 행복이라고 말하겠죠?"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 결혼 생활은 그렇지 못했어요. 생각과 버릇이 부딥쳐서 자주 다퉜지요."

쿠니가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과정은 취재하면서 알고 있던 것이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이런 말이 나왔어요."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 음식을 먹으러 가세요.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행복해지는 방법이 텔레비전에 나왔어요. 저는 가게와 음식 이름을 적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적을 게 무척 많더군요."


'이곳으로 이런 여행을 떠나세요.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병이 생길까 봐 불안하시죠? 이 보험을 드세요. 그러면 안심이 됩니다. 행복이 찾아옵니다.'

'돈 필요하세요? 빌려드립니다. 이 돈으로 행복을 찾으세요.'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러면 이곳에 투자하세요. 책임지겠습니다.'

'아이에게 이것을 사 주세요. 아이가 행복해합니다.'

'이 냉장고를 사세요. 주부가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미래가 불안하시죠?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행복을 보장합니다.'

'우리 당이 앞서서 이런 법을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지지해주십시오.'

'<행복해지는 백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정말 행복이 물밀듯 밀려오던군요. 강력히 추천합니다.'


"행복해지는 방법이 그렇게 많은지 정말 몰랏어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맛있다는 집은 너무 비싼 데가 복잡했고 여행은 직장 때문에 가기 힘들었으며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고 무엇을 사는 것은 남편이 반대를 했죠. 우리는 행복해지는 방법은 시도할수록 지쳐갔고, 그러고 헤어졌죠."

누군가 건배 제의를 해서 두 사람을 들고 있던 잔을 들어 올린 다음 한 모금씩 마셨다.

"행복이란 게 실체가 없는 거란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단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가 행복했구나'정도밖에 없잖아요?"

"그렇지요."

그는 자신이 읽었던 어느 책에 그런 말이 있었다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했다.

"우리 섬에서는 법이 단 한 줄만 있다는 거 기억하시죠?"

"기억해요.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이죠."

"맞아요, 그게 다예요. 우리는 그것만으로 살아도 충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