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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벌교를 기록하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내가 살아본 보성이나 벌교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자랑하고픈 곳이 여러 곳 있다.

독립운동가 홍암 나철과 서재필 박사의 고향이기도 하고

채동선 민족음악가의 고향이기도 하는 인물이 많은 고장이고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독특한 '보성소리'의 창시자 정응민 선생의  예향에 빛나는 고향이기도 하다.

정응민 선생의 제자로는 성창순, 조상현 등이 있으니

정응민은 비록 낯선 이름이지만 그 위용은 알 만하다.


그리고 갯벌과 부용산을 품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졌고,

녹차하면 보성, 보성하면 녹차일 정도의 다향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런 멋진 곳을 더욱 멋지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작품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펴낸 작가 조정래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 태백산맥의 무대가 이곳이다.

비록 조정래 작가는 순천시 선암사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어린 시절은 이곳 벌교에서의 삶이 많았기에 벌교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대단한 듯 하다.


그 분을 기리는 문학관이 바로 여기 벌교에 있다.

 

 

 

 

 


조정래 작가가 썼던 취재수첩과 취재 메모들.

꼼꼼한 그의 성격을 알 수있다.

 

그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대상은 소설, 즉 글쓰기다. 집필 7년만에 완성환 태백산맥(200자 원고지 1만 6500장)과 6년의 연재 끝에 완성한 '아리랑(2만장), '항강(1만5000장)은 '조정래의 한국 현대사 3부작'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1300만부 이상 팔린 역작이다. 게다가 중국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 '정글만리'도 2013년 출간 이후 이미 100쇄를 돌파했고 현재도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다. '그는 무협소설로 치자면 최상승 무공을 익혀 대하소설계에서 한 문파를 창시한 장문인급 반열에 올랐다고나 할까.

(2015년 6월 6일 동아일보에서 옮겨 적다)


그는 대하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한 20년 세월을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매일 25~30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이를 감당할 체력이 필요하다. 그는 20년간 매일 16시간을 집필에 몰두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손체조로 건강을 다졌다. 두주불사인 그가 집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외부인사와의 술을 끊어버려 사람들은 그를 참 지독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가 단 한번도 연재물의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는 사실도 언론계의 전설 중 하나다. 원고지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오른팔 마비, 위궤양, 탈장 같은 직업병이 빚쟁이처럼 어김없이 찾아왔다.(2015년 6월 6일 동아일보에서 옮겨 적다)


 

 

 

 

 


-어려서부터 일기 같은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거기에 재능이 있었다는 건데요. 선생님은 재능에 노력을 가미해 오늘의 성취를 이뤘다고 볼 수 있는데, 만일 재능 혹은 적성에 맞지 않는 노력은 헛고생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이유, 즉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걸 언제 깨닫느냐 하는 시기의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게 분명히 재능이 있는 분야예요.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일이 있듯이 저는 글 쓰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시간을 들인 노력이 가미되는 거지요. 저는 '삼국지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노력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심중에 돌비석처럼 새겨 넣었지요. 지금도 이런 의지와 결심이 인간적 고통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돼주고 있어요." (2015년 6월 6일 동아일보에서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