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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율포앞바다를 기록하다

<보성여행> 9대째 이어온 옹기장인 무형문화재가 사는 곳, 미력옹기

보성은 내 고향 광양이나,

주 생활근거지인 순천에 비해 인구가 무척 작은 군이다.

15만인 광양, 30만이 가까워지는 순천과는 한참 거리가 먼

4만이 조금 넘은 인구를 가진 작은 군이지만

'예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향기는 광양이나 순천에 견줄 수 없이 진하다.

이 작은 군에 미술관이 세개나 있는 것도 그렇고,

전통소리축제가 열리는 보성소리의 창시자 정응민 예적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아이들 체험학습을 따라 그 중 한 곳 고집스레 옹기의 길을 9대째 걸어온

옹기장인이 사는 곳, 그리하여 무형문화재 지정까지 받은 <미력옹기>를 다녀왔다.

미력옹기는 보성읍에서 미력면에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겉보기에는 간판도 허름하고 집도 허술해서 별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작업장 안 쪽으로 들어가서 보니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물레를 돌려 작업하는 모습

위의 사진에서 물레를 돌리는 이 분은 십년 째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 때 사물놀이 동아리를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먼저 이 일을 하던 후배의 제안에 따른 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라 한다.

하루에 이 정도 크기의 옹기를 6개쯤 만든다고 한다.

이 분은 아주 젊은 편이고,

옹기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세가 많아서

지금 병환중인 사람이 있어 비어있는 물레가 두 개나 된다고....

이 분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학수'님이다.

손에 흙 묻히고 사는 옹기장이의 삶을 반대하던

선친 이옥동(94년 작고)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늘의 미력옹기를 있게 한 장본인인다.

숨쉬는 항아리로 2000년 대 이후 옹기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가 늘어가면서

중요무형문화재 제 96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한 우물을 파는 장인의 의지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게 된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쉼없는 질문에도

묵묵히 자기 일 하면서

인자한 미소를 띄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편한 자세로 수없이 두드리고 붙이고,

돌려야 완성되는 옹기.

옹기 한 개를 만들기 위하여

장인의 손길이 몇 번이나 오고 갔을까.



유약을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옹기들.

4일 정도의 건조과정을 거친 후 가마로 직행.

나머지 옹기는 불이 만드는 것이라고....


긴 지네가 한 마리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는

옹기를 구워내는 가마.

기존에 흙가마가 너무 낡아서

새로 만든 가마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예전부터 있던 장작가마

가마는 집의 창문처럼 곳곳에 작은 창이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전국에서 주문받는 옹기 제작은 물론

현장에서 팔기도 한다.

위의 사진은 야외 전시장 모습







위의 넉 장의 사진은 내부 전시장 모습






선생님과 아이들 작품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타래기법으로 밑판을 먼저 만들고

위에 차곡차곡 쌓아올려서 이음새 부분을 최대한 매끄럽게 만들었다.

아이들 답게 숟가락, 포크 등도 만들었다.

재미있는 체험도 하고,

무형문화재 공부도 하고,

옹기 굽는 가마터도 구경하고

여러모로 알찬 체험학습이었다.


처음에는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진 옹기며 여러가지 풀, 나무 등이

눈에 거슬렸으나,

나오는 길에 다시 본 미력옹기에는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장인의 정신과자연이 어우러져

그 나름의 운치를 풍기고 있었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는

얼마 전에 본 교장 선생님의 글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