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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햇빛고을 광양

<광양여행>광양역사문화관을 아시나요?

광양은 1980년대 광양제철소(posco)가 들어서기 전까지

광양읍을 중심으로 한 농업,

지금의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만을 중심으로 한 김 양식업과 어업이

주가 되던 전남의 동쪽에 치우져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남도과 나눠지는

전남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광양군과 동광양시로 나눠지던 것을

1995년 광양시로 통합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상권도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는 옛 동광양시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고

광양군의 중심인 광양읍은

여타의 다른 구도심권이 그러하듯이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읍 외곽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고

중심 상권 지역은 주차장이 없는 관계로

30년 전보다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 곳, 광양읍 한복판, 오래전 광양읍사무 자리에

광양역사문화관이 들어섰기에

둘러보았다.

 

 

 

광양역사문화관은

구 광양군청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광양군청 청사는 근대문화유산 제444호에 등록되어 있는 일본식 이층 건물이다.

광양군청에서 광양읍사무소로 그리고

리모델링 후 광양문화원과 역사관으로 변모하여 왔다.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관공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700여 년간 광양의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는 게

문화재청의 지정이유다.

일제강점기, 여순반란사건 등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을

문화원 옆 수령 400년 된 은행나무와 함께 말없이 지켜보아 온 셈이다.

 

1층 입구에는 원래는 중흥사에

그리고 지금은 광주박물관에 있는

'쌍사자 석등'의 모형이 들어서있다.

유적이 별로 없는 광양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광양을 대표하는 문화인물들의 소개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은장도 인간문화재 고 박용기 옹

광양궁시 기능보유자 김기

청매실 농원의 안주인 홍쌍리 여사

 

일 년 중 햇빛의 양이 전국 최고여서

빛 광, 햇볕 양을 써서

이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광양의 또 다른 이름

션-사인(영어지만 느낌도, 풍기는 맛도, 그 뜻도 좋아 멋진 작명이라 생각)

광양의 사계절이 게시되어 있다.

 

광양의 4대 산성(불암산성, 마로산성, 중흥산성, 봉암산성) 소개

이 중 딱 한 군데 밖에 가 보지 못했네. ㅠ

 

윤동주 유고 시집을 보관하고 있던

친구 정병옥 님의 가옥을 형상화했다.

광양시 진월면에 보존되고 있는 가옥으로

해마다 윤동주유고시집 발견을 기념하여

광양신문사 주최로 전국 규모의 <백일장 대회>가 열리고 있다.

 

 

광양을 대표하는 학자 매천 황현

-하지만 황현 관련 사업은 그가 태어난 광양보다는

그가 거주하였던 구례에서 더 활발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원한 동화작가 고 정채봉님은

태생은 순천시 해룡면이었으나

광양동초등학교-광양중학교-광양농업고등학교를 다녔기에

그의 정서나 그의 친구, 그의 말투 모든 것이

그가 광양사람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지금 그를 추모하는 기념관이나 사업은

순천이 더 활발하다.

이래저래 광양은 문화적으로는 아직은 여타의 시군에

뒤쳐지는 형편이고, 이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형제의병장 광양봉강면의 강희보, 강희열

그리고 유학자 신재 최산두님

 

 

광양의 지나온 역사를 알 수 있는 사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전시실 모습이다.

마침 수채화전이 열리고 있기에 찍어왔다.

 

 

역사문화관의 또 다른 공간에는 광양문화원이 자리하고 있다.

2014년 4월 1일 현 김휘석 원장이 제14대 광양문화원 원장으로

취임한 이래

의욕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원장실이 있던 것을 자료실로 바꾸고,

본인은 사무실 한 쪽에서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업의 하나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하여

<광양읍성문화축제>를 하고 있는데

이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광양역사문화관 밖에 있는 수령 400년 된 은행나무.

그늘이 넓고 길다.

 

이 건물 바로 옆에 지금은 철거된 작은 보건소가 딸려있었다.

어느 해던가?

할머니 손을 잡고 보건소로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적이 있었다.

눈물 반, 콧물 반을 흘리며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떼를 부리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보인다.

 

아아,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르던가?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도 돌아가신 지 30년 가까이 되었고

나는 오십 줄에 들어선 중년이 되어버렸다.

방문객이 너무 없어 쓸쓸함이 풍기는 문화관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어린 시절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