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7일 친구랑 앵무산 오르기 위해 만나기로 한 곳에서
접시꽃을 보았습니다.
나팔꽃 같기도, 무궁화 같기도 하고, 작은 부용화 같기도 한
이 꽃은 접시꽃입니다.
접시꽃 피면 <접시꽃당신>이 생각나고 자연스레 도종환 시인도 떠오릅니다.
도종환 시인은 결혼하고 2년만에 부인과 갑작스런 병으로 이별하게 되자
부인을 그리워하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재혼하여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어 교육분과에서 활동하는 모양인지
간혹은 학교로 조사 공문이 내려오곤 합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 하나 가슴에 묻어두지 않는 이 없겠지요?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시인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래봅니다.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일상의 풍경 > 일상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동창 수학여행(2016.8.27) (0) | 2016.08.29 |
---|---|
(목포여행) 옥암수변공원 (0) | 2016.05.24 |
행복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오늘! (0) | 2015.03.23 |
봄님, 그 님이 오시나 봐요 (0) | 2015.03.16 |
백숙 한마리가 남긴 반성문 (0) | 2014.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