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들과 수학여행을 갔다.
이름하여 "청바지입고 수학여행~~"
초등 동창회가 조직된 지 13년이 지났다.
당시 모교에 근무하던 나는 모시던 교감선생님께서 총동문회 총무를 하시는 바람에
우리 기 창립멤버로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의 사랑 속에 십 년 넘는 기간 동안 나름 자리를 잡았다.
초등 동창회는 그런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공부잘하는 친구가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 돈 많고 권력있는 친구가 세를 넓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소박하게 모교 주변에서 벌어먹고 사는
그래서 번개치면 언제라도 모일 수 있는 평범한 보통의 친구들이 꾸려가는 것 같다.
다른 기에 비해 통 크게 돈 쓰는 친구도 많지 않고
다른 기에 비해 그렇게 잘 나가는 친구도 없으면서도
나름의 자리를 잡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배려하는 임원진들의 수고로움이 컸다.
특히 올해는 남학생이 아닌 여학생이, 그것도 자진하여 처음으로 회장을 맡았기에
그 의미가 각별했다.
그 친구가 회장이 되어 버스 빌려서 처음으로 여행을 간다기에
빠질 수 없는 결혼식이 있었음에도 축의금만 보내고 참여하게 되었다.
동창회라는 게 그렇다.
오늘 모임을 독려하느라 카톡방에서 근 열흘 넘게 까톡거리는 소음 아닌 소음을 듣고 있는데
인내력의 한계가 왔다.
참 부지런한 친구들이다.
영아, 옥례, 점숙, 승원, 그리고 회장님 옥덕!
때론 나와 별 상관없이 보이는 수다가
이름도 얼굴도 기억 안나는 친구 부모님의 부고장이나
친구 아들 딸의 청접장이
참석할 수 없는데 날아오는 번개팅이
성가시고 귀찮아서 나가버려야지 몇 번씩 마음먹었었지.
그런데도 차마 그러지 못했던 건
나도 그 과정을 겪어 보았다는 사실.....
죄지은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는데
친구들이 모임에 안 나오면 내 죄같은 그 간절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지
어쩌면 모임에서 가장 후순위로 밀리는초등 동창 모임을 십 년 이상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고생하는 친구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친구들아!
너도 임원되면 이렇게 간절해진단다.
어떻게든 그 끈을 오래 연결해서 모임 때 한 명이라도 더 나오게 만드는 것,
그 마음 부디 기억하여 여름모임 8월 27일에 많이들 나오렴
임원 친구들아!
복 많이 받아라.
땀흘리는 것만이 봉사가 아니란다.
친구들 위해 응답없는 카톡방에 아침 저녁 문안인사하는 너도 큰 봉사자란다.
힘내렴!!
단체 카톡방에 이런 글을 썼던 것도 순전히 자꾸만 흐려져가는 내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내 카톡 덕분에 친구들이 한 명이라도 더 왔다고 하니.....다행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오늘의 행선지는 진주 반성 수목원
광양 근무할 때 다른 학년들이 이곳으로 소풍 가는 것만 보았지
실제로 와 본 건 처음이었다.
어제 비가 와서 모처럼 날씨는 선선해졌고,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먼저 수목원을 한 바퀴 돌았다.
30여 분이 조금 더 걸리는 숲길을 따라 사목사목 걸었다.
가뭄 탓인지 일찍 낙엽을 떨군 느티나무 길...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가을 느낌이 팍팍 난다.
그제까지의 숨 쉬기 곤란할 정도의 더위는 어디로 갔을까?
옥잠화가 무리지어 피어있네.
파란 하늘엔 뭉게구름.....
회장이 복이 있어서인지. 날씨 한 번 잘 잡았네
다른 수목원에 비해 그리 넓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아기자기 아름답게 잘 가꿔놓아 오후가 되자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집행부의 철저한 준비 덕에 보물찾기도 하고,
맛난 점심도 먹고, 단체 윷놀이도 하고...
결국은 너무 떠들어서 안내방송으로 지적도 받았다는....ㅋㅋ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가 아닌 사천으로, 남해로 국도로 돌았다.
바다가 끝도 없이 보이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오면서 7080노래 타임이 이어졌다.
'구름과 나' '나 어떡해' '중년' '영아' '하얀 목련' '물고기 자리' '그 겨울의 찻집' '천년의 사랑'....
세대를 같이 한다는 건 이래서 좋은거다.
부르는 노래마다 다 알겠다.
노래는 마력을 지닌지라 그 노래를 듣노라면 그 때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 준다.
파란 하늘,
뭉게 구름.
점점이 섬이 있는 아름다운 바다,
내가 청춘일 때 들었던 노래,
그리고 좋은 친구들,
노래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윷놀이 할 때는 조금 심심했고,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는 조금 서먹하기도 했었는데
노래가 뭐라고,
그 노래 따라 마음이 그득하게 차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오면서 바라본 해넘이가 기가 막히네.......
20명이 참석한 초등 수학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되는거다.
오늘을 열심히 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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