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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율포앞바다를 기록하다

보성여행-봉황의 울음소리 작고 아름다운 간이역 명봉역을 아시나요?

보성 명봉역에 가 보았다.

지난 번 블러그 친구의 글에서 명봉역을 보고 내가 사는 보성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 번 들러본다는 게 늦어버렸다.

명봉역은 작고 아담한 간이역이다.

내가 사는 보성군과 화순군의 경계에 놓인 작은 역이지만 아름다운 풍광과 오래된 역사로 인해

아는사람은 알아주는 아름다운 역 중의 한 곳이다.

 

순천과 광주송정을 오가는 서부경전선의 한 곳으로 하루에 네 번 기차가 선다.

1930년 보통역으로 시작되었다가 1958년 현재 역사의 모습을 갖추었고,

지난 2008년 사람이 배치되지 않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80여년의 세월 동안, 떠남과 만남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아 온,

그래서 보기만 해도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되는 곳 이곳 명봉역이다.

 

 

들어가는 왼편, 벚나무가 보인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고, 꽃잔디 아름다운 봄날이라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그림같은 풍경이다.

 

 

작고 아담하여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많이 쓰였나보다.

영화 '여름향기'의 촬영지라고 한다.

명봉역 바로 앞은 이런 모습이다.

한적한 시골길,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때는 오뎅국이나 막걸리 한 사발, 찐빵 등을 팔았을 법한 가게들도

주인이 살지 않는 듯 쇠락한 모습이다.

 

 

 

 

 

 

 

산골오지 간이역 명봉역을 방문하심을 환영합니다.

방문기념 스탬프는 절취선을 잘라 가십시오.

쓰여진 옆에 방명록이 있었다.

인상적인 내용이라서 옮겨 적어본다.

 

"제3대 명봉역장으로 근무하셨던 촤만준씨의 삼남으로

역사에서 태어난 최영규입니다.

69년 전 여기 태자리에서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고 그립습니다.

공기좋고 물맑은 명봉역에서

점심도 먹고

재미있게 쉬었다 갑니다.

2015년 4월 26일

방문자 최영규"

 

 

 

 

 

 

 

역사 내에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양 벽면이 빼곡하다.

보성이 낳은 문정희 시인의 작품도 보인다.

 

명봉역

문정희

 

 

 

아직도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겠지

서울 가는 상행선 기차 앞에

차창을 두드릴 듯

나의 아버지

저녁 노을 목에 감고

벚나무 슬픔처럼 흰 꽃 터트리겠지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하겠지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눈 앞에 빙판길

미리 알고

봉황새 울어 주던 그 날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눈 시리게 서 있겠지요

 

 

 

 

 

 

덜그럭거리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나는 아들이나 딸을 배웅하기 위해

이 역사 한때는 붐비었을텐데.

어미새 모이 물어 나르듯, 자식 먹이고자 바리바리 짐 쌓은 보따리 들고

그 어미

이 역사 어딘가를 서성거렸을텐데.

명봉역은 수많은 사연을 말 없음표 속에 감추고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나무지만 제각기 다른

오월의 신록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