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행복감을 안겨준 딱따구리 가족
우리 학교 관사 입구에는 늙은 벚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내가 부임하기 전, 태풍에 몸통과 가지가 부러져 몇 군데 톱질을 당했으며, 껍질은 벗겨지고 벌레구멍이 숭숭 나있어 보는 볼품없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봄이 되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듯 남은 잔가지에 벚꽃 몇 송이를 힘겹게 피워내는 이 벚나무에 딱따구리가 파다만 듯한 구멍 2개가 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올해로 부임한지 4년 째, 5월 중순에는 딱따구리가 나무 둥치에 앉아 쪼는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이내 날아가 버리고 그 후로 통 소식이 없었습니다. 관사 초입이라 보금자리로 삼기엔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녀석의 화려한 색깔과 크기, 몸짓이 오색딱따구리란 생각이 들어 인터넷도 찾아보았습니다. 그 후 이 녀석은 운동장 그네 옆에서 맑은 목탁소리 같은 딱따구리 소리를 두세 번 들려주었습니다. 교문 옆 큰 소나무에서도 쪼는 행동을 하고 날아가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작은 흥분이 일었습니다.
‘혹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었을지도 몰라!’
며칠이 지났을까! 퇴근 후 관사 앞 늙은 벚나무 가까이 둥치 속에서 나무속을 쪼는 듯한 작은 울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 녀석에게 혹시나 방해될까봐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나무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는 동쪽 창고 쪽 언덕을 길 삼아 관사로 들어왔습니다.
그 며칠 후 교무실에서 늦은 퇴근을 하는데 나무둥치 속에서 작은 새끼들 소리가 들렸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확인을 해 보고 싶어 조심스럽게 발길을 돌려 나무 가까이 몇 발자국을 옮기는 중 밖으로 나오던 어미 딱따구리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화들짝 놀란 어미 새가 당황한 듯 큰 소리를 내며 날아가 버렸습니다.
‘괜한 짓을 했나!’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녀석이 다시 새끼들을 돌보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야 설마 새끼들을 놓아두고 찾지 않으려고......’
그 후로 녀석을 보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여름이라 관사 창문을 1/4쯤 열어두고 생활하기에 녀석이 찾아오는 모습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방충망 때문에 밖의 풍경이 선명하지는 않으나 몸을 숨기기에는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화장실을 다녀오다가도 틈만 나면 내 눈은 어김없이 늙은 벚나무를 향했습니다. 학교 컴퓨터실에 갈 일이 있거나, 2층 영어실에 갈 때도 눈길은 늘 벚나무를 향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녀석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아침과 저녁 식사시간에 희미하게 둥지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녀석은 나무 몸통을 붙잡고 있다가 주위를 극도로 경계하며 빠른 속도로 구멍 쪽으로 오르며 새끼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나만 알고 있는 즐거운 비밀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소문내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혹시나 아이들이 알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하며 지내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아이들이 관사 옆을 지날 때나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찾는 날이면 가슴을 졸였습니다.
특히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3학년 선생님이 텃밭을 찾는 날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3학년 선생님께 나무와 멀리 떨어진 창고 옆 언덕으로 다니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의아해하는 선생님을 위해 할 수 없이 ‘즐거운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나 자신도 녀석들에게 방해될까봐 관사로 가는 빠른 길 보다는 길 없는 창고 옆 언덕으로 다녀 직원들이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비밀 아닌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지요. 풀밭에 이슬이 맺혀 있고, 나무 사이에 거미줄이 갈 길을 방해하여도 녀석들을 생각하면서 빙-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습니다.
요 며칠 전에는 장마에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녀석의 집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녀석은 이런 자연의 변화를 일찍 감지하기나 한 듯 북쪽으로 구멍을 낸 것이었습니다. 다른 벚나무에서도 발견한 일이지만 딱따구리 녀석의 집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은 앞날의 재난에 대비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주말에 광주에 있는 집에 있을 때에도 가끔 녀석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쯤 녀석은 사람들 눈치 안보고 마음껏 새끼들을 돌보며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한번은 쉬는 시간에 새끼 딱따구리가 궁금하여 늙은 벚나무 쪽으로 가고 있는데 학교 주무관이 벚나무 가까이에 있는 백일홍 나무에 농약을 치고 있었습니다. 잎이 희끗희끗해진다는 이유였습니다. 다행히도 바람은 반대쪽으로 불고 있어 안심은 되었으나 걱정은 덜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농약을 치면 안 될까요? 딱따구리 새끼가 벚나무 안에 있는데.....”
“그래요?! 약성이 약해서...... 조심스럽게 약을 칠게요.” 마음은 조금 미덥지 않았지만 새 새끼들 때문에 약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할 수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새끼가 태어난 지 어느덧 3주 이상이 흘렀습니다. 오늘 아침(7월 22일)에도 몸을 씻은 후 물기가 채 마르기 전에 어김없이 눈을 돌려 늙은 벚나무로 향하였습니다. 한데 빠르게 벚나무 아래쪽으로 움직이며 날개를 퍼덕거리는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미인줄 알았으나 찬찬히 보니 길을 가로질러 모과나무 쪽으로 걷는 모습이 새끼였습니다.
‘좀 이상하다!’
혹시 딱따구리가 이사를 하는걸까?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한참을 주시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녀석은 10미터 남짓 떨어진 모과나무 밑에서 위쪽을 향하여 날개를 퍼득거리고 오르내리기를 수십 번, 더 이상 어찌하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들 고양이가 저 모습을 보는 날이면 큰일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옷을 주섬주섬 급하게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경계심을 심하게 드러내는 녀석을 잡아 늙은 벚나무에 손을 뻗어 놓아주었습니다. 녀석은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놀랬다는 듯 큰소리로 연방 소리를 질러대며 위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마도 이 녀석은 둥지가 좁아 안에 있는 녀석에게 뜻하지 않게 둥지 밖으로 밀려나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 모습을 어미 새가 마음 졸이며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얼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방에 들어와서도 늙은 벚나무 쪽을 한참을 주시했습니다. 하지만 어미 새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울부짖는 새끼를 외면한 어미 새에게 미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어미 새가 얼른 돌아와서 먹이도 주고 해야 할텐데…….’
할 수 없이 아침을 먹으며 계속 주시하던 터에 어미 새는 한참 만에 나타나서 놀란 새끼를 진정시켜주는가 싶었습니다. 조금 안심되는 마음으로 서둘러 밥을 먹고 관사를 나서며 둥지 쪽을 보니 녀석은 다시 둥지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휴, 다행이다! 녀석들이 별탈없이 이소에 성공해야 할 텐데……. 인간이나 동물이나 사회화 과정까지는 너무도 험난하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교무실에 들어섰습니다.
그 동안 볼품없어 보이기만 했던 늙은 벚나무가 오늘따라 정말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 동안 딱따구리 가족을 품어준 세상에 둘도 없는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물은 없구나!’
이제 딱따구리 가족이 떠나면 이슬 맺힌 언덕길을 오르내릴 일도, 걱정과 가슴 졸일 일도 없겠지만 마음 한 쪽 휑한 바람이 들어옴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마음을 졸이게 하고, 걱정과 함께 행복감을 안겨준 녀석들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녀석들이 떠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오늘 아침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어미 새가 모과나무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채 딱따구리 새끼들에게 날개짓을 하라고 외쳐댑니다. 어미새의 비장한 모습에 혹 방해될까 옆 눈으로 비켜보며 교무실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새끼들이 떠나려나봐. 내일이면 못 볼 것 같애!”
요 며칠 딱따구리의 소식을 누구보다 흥미롭게 전해들었던 교무행정사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딱따구리 새끼들이 모두 이소에 성공하여 내년에 또 다시 이곳을 찾아와 맑고 청아한 목탁소리를 들려주기를 간절히 고대해 봅니다. (최종호 교장선생님이 쓰신 글)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전임지에서 쓰신 글이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분의 선한 마음이 글 전체에 잘 나타나있다. 이런 분을 교장선생님으로 모실 수 있어서 행복하다. 좋은 글이란 진솔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가슴으로 쓰는 글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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