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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감동이 있는 글

할머니, 어디 가요? 앵두 따러 간다!

할머니, 어디 가요? 앵두 따러 간다!

 

조혜란 그리고 씀, 발제 최경련

 

감꽃 피고, 석류꽃 피기 시작하고 밤꽃 피면 내 마음에선 이미 여름의 시작이다. 지금이 딱 그렇다. 울을 경계로 길 가에 가지를 뻗던 큰 감나무꽃이 피면 감나무 없던 집의 아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감나무 아래로 몰려들었다. 밤 사이 떨어진 감꽃(감똑)을 주워 먹기 위해서다. 떨떠름하고 달큼한 맛이 나던 감꽃은 운이 좋으면 풀 위에 떨어져 곧바로 입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땅에 떨어지면 주워서 털어내는 수고를 거쳐서라도 먹을 만한 주전부리였다. 이제부터 산딸기 익어가고 누른빛 들기 시작하는 보리 꺾어 구워 먹던 보리 서리, 밀 서리하는 시기로 접어든다. 6월 중순 보리 밸 무렵 앵두 익고 뽕나무 오디가 익고 멍석딸기 익어가는 7월이 시작된다.

 

마을 아이들은 쇠꼴 베어오고 나면 마을 뒤 켠 큰상수리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구슬치기며 오징어놀이 비석치기를 하며 놀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면 마을 저수지에 첨벙 물장구 치고 수영하며 놀았다. 물수제비 놀이 그리고 저수지 가장자리의 마름잎줄기를 따라 물속을 파헤쳐 까만 마름열매를 질겅질겅 씹어 침에 녹은 녹말속살을 먹었다. 자맥질에 능한 형들은 물 속 깊이 들어가 손바닥보다 더 큰 말조개를 시합삼아 잡곤했다. 뱃 속이 꼬르륵, 물놀이에 지칠 즈음 마른풀에 불을 피워 비릿한 냄새의 말조개 속살을 드러내어 먹기도 했다. 수박서리, 참외서리, 옆집 텃밭의 오이나 가지를 슬쩍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지만 배고픔은 성장기형들에겐 큰 고통이었다. 형들이 하나둘 공장 찾아 서울로 부산으로 떠나고, 학교공부 하러 떠나면서 나의 시골 생활도 점점 빛을 잃게 된다.

 

아이들이 없는 시골은 재앙이다. 아니, 공부만이 자식의 인생을 바꿀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졌던 때부터, 농사짓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가난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굳은 신념으로 무장된 때부터 이미 재앙은 시작되고 있었다. 90년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아이들에게 시골은 없었다. 방과 후 활동 끝나고 학원으로 집으로... 집에 오면 컴퓨터에 TV를 더해 요즘은 핸드폰까지.... 이젠 숙제도 핸드폰으로 하는 시대이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도시 아이들을 되뇌임에 무엇하랴.

 

아이들에게 자연은 없다. 자연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연을 모른다. 책 이전에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온몸으로 익혔던 어린시절. 이젠 백과사전이나 도감을 뒤적거리며 지식으로 이해하고 만다. 그리고 다 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감성을, 창조성을 인간성 회복을 소리치고 있다. ‘삶을 가르치는 교육을 외치는 학교현장의 교육도 여전히 학교교육목표 속에만 존재하고 이젠, 자연을 잃어버린 세대의 교사들이 아이들 앞에 서는 시대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공부는 흙을 밟게 하고, 풀벌레를 알게 하고, 이름 모를 풀꽃을 알게 하고, 먹거리로 바람으로 색깔로 다가오는 계절의 흐름을 알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땀 흘려 가꾸는 농사짓기의 삶을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한다. 환경오염, 생명존중, 자연사랑의 구호가 아니라 온몸으로 배우는 자연이어야 한다. 마을에서 어른들이 하는 얘기에 관심 기울이고, 가꾸는 작물에 관심 기울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몸짓들을 가르쳐야 한다. 재동이네 증조할머니가 심은 앵두나무와 뽕나무 열매가 이웃을 이어주고 어른을 이어주듯 어른들의 삶이 아이들의 삶에 와 닿아야 한다. 마을의 오래된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 과일나무와 관련된 조상님의 이야기, 저수지 이야기 등 마을의 역사와 자연을 온전히 되돌려주는 일이어야 한다. 옥이와 할머니의 건강한 삶, 온몸으로 생산하여 나눠도 먹고, 남은 것은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아이들이 배워야 할 일이다. 소박하고 당당하고 행복한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산업화 세대로 대변되는 아버지 세대가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살아왔던 삶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는 주었지만 치룬 대가는 너무도 크다. 민주화로 대변되는 우리 세대는 반쪽 민주주의는 찾았지만 산업화 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본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갈등의 주역이 되어 오히려 한 술 더 뜨고 있다.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포장되고 이웃의 고통에 둔감하다. ‘아파트값만 올릴 수 있다면 누군들 대순가하고 있는 순간, 세대를 이을 젊은이들은 희망의 뿌리마져 송두리째 뽑히고 있다. 거대한 자본의 격랑 속에서 나만 그러느냐. 세상이 다 그런 것을 항변하며, 세상에 순응하며, 각자에겐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조상들이 살아왔던 농경문화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지금,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없다. 경로당에선 TV조선으로 대변되는 공중파 방송들이 100세 시대를 찬양하기에 바쁘고, 우리네 외로운 어버이들은 점심밥 나누며 버르장머리 없는 세상을 나무라며 그렇게 쓸쓸이 스러지고 있다.

 

시골 장독대 옆 앵두나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잔뼈가 굵어왔던 시절이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뒷걸음 치고 있는 것은 나의 전설이 나의 희망이 나의 삶이 궁핍해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꿈만 꾼다. , 몇 년 만 근무하고 시골로 내려가야지. 꿈만 꾸다 어느 날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지도 모를 일을 늘 그렇게 위안하며 살고 있다.

(2015.5.26.) 최경련 선생님이 쓴 글을 옮겨 적다.

 

 

세상에는 멋진 사람도 참 많다. 글 잘 쓰는 사람도 많다.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글이다. <할머니, 어디가요? 앵두 따러 간다>는 어린이책을 보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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