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열며 -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텃논, 텃밭에서 좀 놀았으면 좋겠다. ‘수업’이라는 이름으로도 좋고, ‘놀이’라는 이름으로도 좋다. 삶의 일부로, 문화로 농(農)을 누리고 향유했으면 좋겠다.
텃밭에서 흙장난도 좀 하고, 어제 심은 당근이 싹이 돋았나, 그제 심은 완두콩은 소식이 좀 있나 궁금해하며 몰래 파 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새콤달콤 딸기도 따 먹고, 토마토도 한입에 베어 물어 그 싱싱한 향긋함도 누려 봤으면 좋겠다.
철마다 열릴 앵두며, 보리수며, 오디, 산딸기, 까마중 열매도 따 먹어 보고 그 재미를 느껴 봤으면 좋겠다. 오디 따 먹다가 시커메진 친구 손이며 입 주변을 깔깔거리며 놀리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철이 오고 가는 것도 알고, 철따라 피고 지는 꽃이며 나무며 채소도 알았으면 좋겠다. 에이 몰라도 좋다. 그냥 그 재미와 신비를 느껴 보고 한 조각 몸속에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텃밭에서 놀다가 곤충도 만나고 징그러워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면서 그러다 친해지기도 했으면 좋겠다. 외수레를 밀다가 넘어져도 보고, 서툴지만 호미와 삽으로 땅도 좀 파 봤으면 좋겠다. 일하다 굵은 땀방울도 흘려 보고, 동무들과 어울려 ‘흠뻑’ 일도 좀 해 봤으면 좋겠다. 장난치다, 꾀부리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한테 핀잔도 듣고 선생님한테 혼도 좀 나 봤으면 좋겠다.
텃밭 옆 텃논에서 내가 매일 먹는 ‘쌀’이 어떻게 생겼나 구경이라도 좀 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다 벼를 만져도 보고 괜히 냄새도 맡아 봤으면 좋겠다. 이삭이 맺히면 몇 알 털어 입속에 넣어 보고, 오도독오도독 씹어도 봤으면 좋겠다. 작은 논 속에서 꼬물꼬물 올챙이며 송사리도 만나고, 그놈들 잡으려다 몰래 논에 첨벙 들어가기도, 잡으려다 놓치기도 해 봤으면 좋겠다.
국어 수업, 수학 수업도 가끔은 텃밭해서 했으면 좋겠다. 시도 써 보고 글도 써 보고, 내가 만든 이랑 길이도 재어 보고, 내가 수확한 호박 무게도 재어 보면 좋겠다. 미술 시간에 풍경화니 세밀화니 하는 것들 말고 텃논, 텃밭에 나와 벼도 그려 보고, 가지며 토마토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빛깔도 생김새도 그려 봤으면 좋겠다. 과학 시간에 배운 이슬도 텃밭에 있고, 식물도 곤충도 텃밭에 있는데, 그런 것들을 ‘글’로, ‘사진’으로만 배우지 말고 ‘몸’으로도 배웠으면 좋겠다.
학교에 도서실, 컴퓨터실, 영어실이 있듯이 텃밭도 있고, 텃논도 있고, 부엌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예쁘고 편하게 지어진 부엌, 그 부엌에 둘러 모여 함께 가꾸고 수확한 채소에 얽힌 이야기도 나누고, 그걸 가지고 요리도 해 봤으면 좋겠다.
닭도 키우고 토끼도 키워 봤으면 좋겠다. 밭에서 김을 매서 풀을 수확해 닭도 주고 토끼도 주고, 그것을 쪼아 먹는 닭의 모습이며 오물오물하는 토끼 입을 한참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암탉이 막 낳은 따끈한 알도 느껴 보고, 암탉이 알을 품는 모습이며, 깨어난 병아리들이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도 봤으면 좋겠다. 아참! 닭똥, 토끼똥, 그리고 먹다 남은 음식물로 퇴비간에서 퇴비도 좀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 다시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순환’도 몸으로 겪어 배워 보면 좋겠다.
기다려도 봤으면 좋겠다. 오늘 심은 고구마 줄기가 내일 당장 고구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필요하고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명이 자라는 데는 무엇보다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 봤으면 좋겠다. 벼가 알곡을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께하는지, 손바닥 안의 작은 씨앗이 어떻게 그리 큰 것이 되는지, 그 안에 해도 담기고 땅도 담기고 시간도 담기고 나도 다른 생명도 담겨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우주를 저 멀리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통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르고 먹는 곡식이며 채소를 통해 만나고, 나도 세상과 우주와 연결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세밀하게 느끼고 구체적으로 겪어 배워 봤으면 좋겠다. 텃논과 텃밭, 부엌에서,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그랬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농사를? 학교에서 농사를!
이름도 생소했던 ‘학교 텃밭’이 ‘학교 농업’, ‘스쿨팜School-farm’, ‘에듀팜Edu-farm’, ‘식생활 체험장’ 등 참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갑작스러운 학교 농(農) 혹은 학교 텃밭의 부흥(?)이 반갑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 안타깝기도 하다. 농업계 쪽에서는 학교 텃밭이 하나의 ‘블루오션’으로서 교육적 전망보다는 (교육은 하나의 명분이고) 경제적 전망으로 주목받고 있고, 교육계에서도 학교 텃밭이 또 하나의 ‘체험 활동’, ‘특색/특별 활동’ 정도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과 같은 식의 텃밭 부흥과는 다른 의미에서 보다 많은 학교에서 ‘농사’를 지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어나 수학, 영어를 배우듯 학교에서 당연스럽게 농(農)을 배웠으면 좋겠다. 삶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야기하는 지금, 농(農)이 교육과정의 주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교실, 도서관, 운동장이 있듯이 이제는 학교에 ‘텃밭’과 ‘부엌’이 교육의 공간으로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農)은 우리 삶의 일부다. 먹지 않고 사는 이 누가 있으며 자연에 빚지지 않고 사는 이 누가 있겠나? 산업화, 도시화라는 이름으로 저 구석으로 쫓아 버린 농(農)을, 이제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사라져 버린 농(農)을 교육의 이름으로 다시 불러내 만나야 한다.
‘아이들을 농사꾼으로 만들 셈이냐?’라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아이들은 농부가 되어야 한다. 더 정확히는 아이들이 ‘학생 농부’가 되어 해 보아야 할 ‘교육적 경험’이 있다.
농부의 경험, 농(農)의 눈으로 세상 보기
농(農)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을 가꾸고 기르는 일이다. 아이들이 해 보아야 할 ‘교육적 경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체적으로 만나 기르고 돌보는 경험, 생명을 길러 보고 먹어 보며, 다른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익히고 배우는 경험이다. 땀 흘려 일해 보고, 혼자 그리고 여럿이(친구와 다투기도, 다독이기도 하면서) 자연 속에서,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공부해 보는 경험, 그러면서 내가 다른 생명과 연결 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세밀하게 느껴 보고 겪어 보는 것, 그래서 그것을 나의 일부로 ‘신체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실제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해외에는 내가 꿈꾸듯 말하는 텃밭 교육을 ‘현실’로 펼쳐 내고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School garden, Edible schoolyard, Food for life, Incredible edible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미국의 Edblie schoolyard와 영국의 Incredible edible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이 사례들은 기회가 되면 이후에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았으면 한다). Edible schoolyard는 ‘텃밭’과 ‘부엌’을 교육의 중심에 두고, ‘농(農)’ 또는 ‘음식’을 교육과정의 핵심에 둔다. 글쓰기 수업, 과학 수업, 수학 수업 등 여러 수업이 텃밭과 부엌에서 농(農)과 연계해 이루어진다. 농(農)이 교육의 ‘주변’이 아닌 ‘중심’에 서서 어떻게 펼쳐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Incredible edible 역시 흥미로운 사례이다. 지역사회를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먹을 수 있는 풍경’으로 가꾸어 나가는 활동은 학교의 사례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바가 크다. 해외에서는 ‘농업’에서 ‘음식’으로 그 표현과 관심, 관점을 옮겨 가는 추세이다. 농업이라고 했을 때는 농업인들만의 문제라 여기기 쉬운데, 음식/먹을거리라고 했을 때는 이것이 우리 모두의 일상이고 문제라는 것이 보다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Incredible edible에서는 먹을거리야말로 남녀노소 모두의 ‘언어’이자 ‘관심’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지역사회의 풍경을 이에 맞춰 바꾸어 나가는 동시에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학교 텃밭이 단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활동’을 넘어서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계될 수 있고, 지역의 이슈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그 힌트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이런 해외 사례는 아무리 빛날지언정 우리의 사례는 아니다. 우리에게 어떤 자극과 영감, 희망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각각의 사례는 그 사회가 가진 고유한 문제의식과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만의 문제의식과 고유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사례’와 ‘답’을 찾아야 한다. 아니 함께 ‘길러야(Grow)’ 한다. 우리 밖의 사례가 아닌 우리 안의 사례를.
‘활동’이 아닌 ‘일상’으로
나는 교육에서 농(農)이 하나의 ‘활동’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육의 방식 혹은 철학으로, ‘일상’으로, ‘문화’로, ‘삶의 방식’으로 다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텃밭도 하나의 ‘활동’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살아가는 삶의 문화로, 일상으로 가져가는 방식이었으면 한다. 그 구체적 모습이 뭘까?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농사학림의 교사 농부들이 각자의 현장 속에서 펼쳐 낸 실천들 속에서 나는 충분한 가능성을 본다.(박형일 농부님이 쓰신 글)
텃밭에 관계된 글을 읽다가 좋은 글이 있어서 옮겨 적습니다.
'내가 읽은 책 > 감동이 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딱따구리를 품은 늙은 밤나무 (0) | 2015.06.11 |
---|---|
할머니, 어디 가요? 앵두 따러 간다! (0) | 2015.06.11 |
선생되기 12가지 방법 (0) | 2015.05.21 |
봄날은 간다 (0) | 2015.05.21 |
이십대 청춘에게 보내는 글 (0) | 201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