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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삶과 문학

진정한 공부는 줄탁동시가 일어나야, 정년퇴임하는 광양여고 박영식 교장선생님

진정한 공부는 줄탁동시(啐?同時)가 일어나야

 

38년여의 교직인생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임하는 광양여고 박영식 교장선생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공개한 ‘2014.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 전국 초고교생 18402명의 희망직업을 설문조사 한 결과 국내 중고교생과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가장 희망하는 직업은 교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남학생만 21.1%가 운동선수를 1위로 선택했다. 2012년 조사에서 남중생은 의사를, 남고생은 회사원을 1순위로 꼽았으나 3년 만에 중고생 모두 교사를 가장 많이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그야말로 옛 말이 되어버리고,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 등으로 하루가 다르게 교사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척박한 교육환경인데 왜 교사가 희망 직업 1순위가 되어버린 걸까?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5포 세대(취업, 주택구입 포기) 등의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는 이때 취업난과 경기불안이 그대로 직업선호도에도 드러나는 건 아닐까?

 

한 해의 시작이 1월에 있고, 하루의 시작이 아침에 있다면 새 학기의 시작은 3월에 있다. 3월이 되면 새 학교에 부임하는 교사도, 새 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도, 새 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도 설레임이 가득이다. ‘우리 반 담임은 누가 될까?’,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새 교장선생님으로 누가 오실까?’ 각자의 위치에 따라 그 설레임은 구체화된다. 교정엔 신입생의 풋풋함과 적당한 긴장감이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은 학생들의 희망직업 1순위인 그곳에서 383개월을 근무하고, 2015228일자로 정년퇴임하는 광양여고 박영식 교장선생님을 만나 그의 교직인생을 되돌아보았다.

 

Part 1 교직 입문 그리고 교사의 길

 

_교직에는 어떻게 들어서게 되었나요?

_저는 광양 옥룡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1976115일자로 거문초등학교로 초임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중등교사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지리과목으로 응시했는데 전국에서 혼자 합격했습니다. 7731일자로 여수 화양중학교에 부임받아 중등교사로 근무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입니다.

 

_교대를 나오셨다니 같은 길을 걷는 후배로서 반갑습니다. 중등교사로 지내시면서 수많은 제자를 만나셨을텐데,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_78년부터 근무하던 약산중학교가 생각납니다. 3학년 담임을 하면서 교실에 백열등을 설치하여 야간 자율학습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실에 전등이 없던 시절이니,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여겨지네요. 하하. 그렇게 공부를 한 끝에 광주연합교사에 68명이 합격하여 개교이래 최고의 실적을 거양했습니다. 82년 여수고등학교에서 만난 3학년 5반 제자들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학생들과는 지금도 수시로 만납니다. 그때는 30대 초반으로 저 역시 의욕이 넘칠 때였습니다. 당시 교장선생님이 <깜지교장>이라는 별명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깜지가 뭔지는 들어보았지요? 하루에 시험지 양면에 목표한 깜지를 무조건 써 와야 합니다. 공부를 했는지 안했는지보다 깜지를 썼는지 안 썼는지 결과로만 말하는 분이셨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한 후 다시 집에 돌아가서 깜지를 쓰느라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저는 형식적으로 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어서 검사할 때 양이 부족하더라도 형식적이지 않으면 통과해주는 등의 융통성을 발휘하였지요. ‘양을 채우지 말고 진짜 공부를 해라는 게 제 신념이었거든요. 교장선생님께 불려가기도 하고, 밤늦게 츄리닝 바람으로 모여 군대식으로 전체 기합을 받기도 했지요. 그런 저의 정성이 통했는지 여수고를 떠날 때는 총동문회로부터 모교 발전을 위한 공로로 교사로서는 최초로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당시 학생들과 끈끈한 정으로 뭉쳐 홈커밍데이에 초청도 받고 매년 스승의 날이면 찾아오는 제자도 많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야간 자율학습시간 틈틈이 학생들과 같이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으니 여러모로 열정을 다하던 시절이었네요.

 

_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학생들과 함께 했다는 여수고 시절의 열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전문직으로 근무도 하셨는데 그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_장흥교육청 장학사로 4, 순천교육청 장학사로 1년 근무하였습니다. 사회체육담당 장학사 일을 했는데, ‘교실진단기법(미국 대학강의 개선을 위한 50가지를 우리 실정에 맞게 구안) 중등편을 주도적으로 개발하여 각 학교에 보급하였습니다. 이후 특별연수기관으로 지정받아 연수를 실시하였고, 같은 주제로 중등교감자격연수 강사로도 출강하였지요. 순천교육청 장학사 시절에는 중학교 무시험 배정업무를 하였습니다. 당시 순천은 신도심의 급격한 인구증가와 구도심의 인구감소로 인한 수요공급의 불일치 문제로 학부모시위까지 있을 정도로 무시험배정에 대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던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학부모공청회, 전화 상담, 방송 대담 등으로 원만하게 해결하여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이루어지게 한 일이 기억에 납니다.

 

_교장선생님께서는 고향사랑도 지극하셔서 광양에서만 17년의 교직생활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17년을 근무했는데, 아마도 스쳐 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웃음). 광양고 5, 백운고 2, 광양실업고 교감 4, 광양고 초대교장 3, 광양여고 교장 3년으로 교사, 교감, 교장을 모두 역임하셨네요. 광양에서의 교직생활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_90년에 광양고등학교에 부임했는데 개교된 지 얼마되지 않아 면학분위기 조성이 안 될 때였습니다. 학부모대표와 협의하여 학부모 지원 하에 영어, 수학 심화반을 만들어서 운영하여 효과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지리 담당이기에 심화반 지도는 못하였지요. 멍석은 제가 깔고, 재주는 다른 선생님들이 부린 셈이지요. 하하. 또 여름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오후 자율학습을 시키려고 보니 에어컨이 없어 학습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학부모의 지원으로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보니 이번에는 전압이 낮아 설치가 불가능한 겁니다. 400V 승압공사를 먼저하고 다음에 에어컨을 설치하였습니다. 날씨가 더워 엉덩이는 땀으로 흥건하였지만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던 일이 보람으로 다가옵니다.

 

Part 2 광양여고 그리고 축구부

 

_교장선생님께서는 교직의 마지막을 제 모교이기도 한 광양여고에서 보내셨습니다. 부임하실 때의 결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_교직 마무리를 고향에서 하면서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교육에서의 좌우명은 줄탁동시(啐?同時)입니다. 병아리가 톡톡 쪼는 것을 ()’, 어미닭이 탁탁 쪼는 것을 (?)이라고 합니다. 병아리가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모든 학생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재능은 다 소중하고, 교육의 효과는 줄탁동시(啐?同時)일 때 극대화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_지난 3년 동안 처음의 결심과 비교하였을 때 얼마나 이루셨을까요?

_학력 신장을 위하여 심화반이 앞에서 이끌어가고, 매화반(보충반)이 뒤에서 미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교생이 목표를 향하여 방향성을 잃지 않고 능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수학생 수월성 확보를 위한 심화반 운영을 위하여 진로지도 및 학습하는 방법에 대한 학습에 대하여 특강을 열기도 하고, 교사와 학생간의 멘토링제도 운영하였습니다. 또 교장실에서 입학사정관 모의면접을 실시하는 등 명문대 입시에 대비하였고, 2015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명문대에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다양한 인재 양성이 목표였는데 올해 진학 실적으로 보면 80%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사제동행 백운산 등반 2, 조계산 등반 1회를 실시한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_광양여고가 앞으로 명문교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_과거에는 여자는 자고로 현모양처가 미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지식의 양이 변하는 이 시대에 맞는 교육관과 인재관이 교사에게도 학부모에게도 필요합니다. 시골 읍지역에 위치하는 한계로 인해 교육의 주체가 학교도 아니고 지역사회도 아닌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아직은 학교가 확실한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지역사회,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이룰 때 광양여고 뿐 아니라 광양 교육 전체가 발전하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합니다.

 

_광양여고에는 여자 축구부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축구부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_여자 축구부는 남자 축구에 비해 자발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스카웃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많고요.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모이고, 그런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비나 학비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습니다. 교육지원청에서는 코치비와 훈련비는 지급되지만 난방비와 숙식비 등은 학교자체 해결이라 힘든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축구대회 한 번 참가하는 데 약 2천만원 가량이 듭니다. 그 많은 돈이 왜 필요할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지도자 포함 30명 정도의 버스 대여비, 숙식비 등을 계산하면 그리 됩니다. 국가대표로 뽑혀 이름이 좀 알려지면 좋은 조건으로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것도 어렵고요.

 

_그럼 어떻게 하면 여고 축구부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요?

박영식_4년제 대학팀이 신설되고 있고, 사회에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선수들의 의욕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나 학부모의 지원만으로는 영양가 있는 식사, 좋은 코치, 알찬 전지훈련, 각종 대회 참가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뜻있는 기업체의 후원이 절실합니다.

    

 

Part 3 퇴임 이후의 삶

 

_교장선생님께서는 228일자로 38년간 몸담아 왔던 정든 교단을 떠났습니다. 정년퇴임 이후의 삶은 어떠실까요?

박영식_오전에는 도서관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문을 읽고 관심 있는 기사를 스크랩하면 오전이 갈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미래학, 또 학생들의 진로교육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많이 모아두었습니다. 사교육 절감에 대한 자기주도학습방법, 미래학과 경제교육을 통한 진로지도, 신문활용을 통한 인문학 교육을 주제로 한 교육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의 진학설명회 때나 학부모교육 등에 저를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_끝으로 교육과 관련지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박영식_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여 진도 나가기에 급급합니다. 자기 주도적이고 내실있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논어 학이편 주해에 學之不已, 如鳥數飛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배움이란 그치지 않기를 새가 쉬지 않고 날개 짓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쉬지 않고 배우고, 배운 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에 관해 배우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_긴 시간 시간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년 이후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