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8일
여행 둘째 날. 평소와 달리 재빠르게 일어난 도은 이와 나. 함께 방을 쓴 할머니는 긴 비행에 지치셔서 컨디션이 안 좋으셨다. 그런데 도은이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말이 어제 밤 내가 잠든 사이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셨다는 거다. 나는 자느라 못 들었지만 굉장히 큰 소리가 났다고 해서 걱정이 됐다. 그런데 할머니를 보니 할머니가 멍하고 행동이 느려진 거 같아 우리는 뇌진탕이 아닌가하고 인터넷에서 주의 깊게 보아두었던 뇌진탕 진단을 했다. 할머니께 이름과 주소를 물어봤는데 할머니는 다행히 이름과 주소를 잘 말씀하셨다.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웃겼다.
그렇게 우리는 조식을 먹고 아오만비치로 이동했다. 하나투어에서 계약해 이용하고 있는 듯 했다. 흔히 상상하는 옥색바다는 아니었지만 고운 모래와 쨍한 햇빛 바다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언제 봐도 평화롭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신난 우리는 보트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놀기 시작. 무료로 빌려주는 보트를 타고 멀리 나가기도 하고, 수영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바다는 바다도 아닌 것처럼 물이 굉장히 짰다. 생각해보니 바닷물에 몸을 담군게 몇 년 만인지.. 근래의 몇 년 동안 하루하루 행복하게 잘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바다도 한번 안와보고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나 빠르게 느껴졌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계절을 즐기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데 말이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봄이면 꽃구경, 여름이면 바다, 가을이면 단풍구경, 겨울이면 겨울산행을 가는 게 참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저런 생각이 드는 것 보면 나도 참 늙었다....) 아이들에게 수영도 가르쳐주며 즐겁게 놀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고 더 노는 줄 알았는데 다른 섬으로 이동한다고 하여 매우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보트에 오르고, 우리가 이동한 섬은 제임스본드섬이었다. 007시리즈를 거의 다 봤지만 이 섬이 어느 장면에서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관광객들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딱히 볼 건 없었다. 그래도 추억남기기에 동참하여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시 푸껫으로 향했다.
일정이 일찍 끝난 수끼를 먹으러 이동했다. 길거리에 많이 보이는 왕의 사진을 보며 태국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태국 왕은 전 세계 왕 중에 가장 부자인 왕으로 태국 국민들의 어마어마한 존경을 받는다했다. 항상 낮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 년에 360일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왕이 된 후 국외로 나가지 않겠다한 약속을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했다. 존경받을만한 왕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가이드가 태국왕을 보면 우리나라 박정희가 생각난다고 했다. 응? 가이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비호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의 인상이 이렇게도 달라 보일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동해 우리는 푸껫 시내에서 수끼를 먹었다. 수끼는 우리나라로 치면 샤브샤브인데 우리나라보다 더 푹 삶아서 먹는 게 특징이라 했다. 고된 일정에 지친 나는 수끼가 참 맛있었다. 샤브샤브보다 넣는 야채나 어묵의 양도 다양했고 고기는 비린내가 나서 못 먹었지만 육수도 맛있고 옥수수를 넣어 먹는 것도 특이했다. 그런데 앞에 할머니는 자꾸 맛대가리도 없다고 하셨다.(ㅋㅋ) 그리곤 자신의 젓가락으로 함께 먹는 수끼통을 계속 뒤적거리셨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뭐라 했을 테지만 내 할머닌데 뭐 어쩌겠는가. 좋았던 기분이 착 가라앉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먹는 둥 마는둥 식사를 마치고 바통야시장을 갔다.
바통야시장은 푸껫 최고의 번화가답게 멋진 술집들이 많았다. 신나게 놀아보려고 눈에 띄게 꾸미고 나온 태국 언니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를 이뤘다. 그래서인지 퇴폐적이고 유흥이 느껴져 패키지 가족단위가 올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50대 두 명과 20대 세 명으로 이뤄진 우리는 볼 것도 할 것도 없어 그냥 메인도로를 쭉 훑고 나오는데, 바로 그곳에서 운명의 코끼리를 만나게 된다. 무심코 걷다 밍키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밍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있었다. 밍키의 레이저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거대한 나무코끼리. 크기만큼이나 아주 비싼 코끼리였다. 하지만 이미 밍키와 선례는 의견교환을 마치고 흥정에 들어갔다. 도은이와 내가 안에 잠깐 구경을하러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데 그들은 이미 구매의사가 확실했다. 가격 흥정이 잘 안되자 도은이와 나는 이런 거 왜 사냐고 했지만 밍키 왈 “그냥☺” 이라고 해서 너무 웃겼다.(ㅋㅋㅋㅋㅋ) 파는 사람이 3만 바트를 불렀는데 반값을 부르지도 않고 17500바트를 주고 결국 코끼리를 샀다. 분명 가이드가 반값을 부르라고 교육까지 시켰는데 그 돈주고 코끼리를 산 거보면 우리집은 호갱님이 분명하다. 무겁기도 엄청나게 무거운 나무코끼리를 득템하고, 마이콜을 나무코끼리 운반자로 만원에 고용한 후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 밍키는 아빠, 마이콜은 글쓴이의 남동생을 뜻하는 말. ㅎㅎㅎㅎ)
숙소로 돌아와 편의점에 가서 과자들과 맥주를 샀다. 가이드가 맛있다고 한 맥주를 적어둔 덕에 시가, 리오 두 가지 맥주를 사 맛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맥주보다 훨씬 맛있었지만 태국에선 맥주가 비싼 편이었다. 물이 귀한 나라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둘째 날도 평화롭게 지나가는 듯 했으나 김도은과 나의 갈등이 있었다.
평소에도 매우 연약한 유리 몸으로 벌써 감기기운이 있고 혀에 구멍이 난 도은이는 에어컨이 너무 춥다고 하였다. 태국 공기는 너무 습하고 덥기에 나도 에어컨을 포기할 수 없어 그럼 아쉬운 대로 온도를 높여주었으나 도은이와 할머니는 그래도 춥다하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할머니는 우리가 이불을 덮어드리면 30분도 안되어서 이불을 뻥 차신다!!!!! 김도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당연히 춥지. 공기가 습하니 쾌적한 공기에서 이불을 잘 덮고 자면 될 텐데 하는 생각에 억울했고, 김도은이 나보고 이기적이라고 뭐라뭐라 해댔지만 나는 나대로 더워서 싫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춥고, 누군가에게는 더웠던 둘째 날도 평화로운 듯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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