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밟아보는 태국 땅. 입국심사를 하며 잠시 해프닝이 있었지만 무사히 통과하고 짐을 찾았다. 그리고는 어른들의 가장 중요한 용무인 술과 담배를 나누는 일을 시작했다. 일인당 한도가 정해져있는 술과 담배가 걸릴까봐 철저히 나눴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아무도 우리 가방을 검사해주지 않았다. 웃기고도 허무한 상황. 그렇게 웃다가 현지가이드 푸를 만나 우리가 타고 다닐 버스로 이동했다.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느껴지는 덥고 습한 공기. 검은 머리에 모두 검은색으로 착장한 나는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 건기라 여행하기 좋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덥다면 더울 때는 얼마나 더울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우리 숙소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창밖의 푸껫 풍경은 그냥 시골 마을 같았다. 그리고 전깃줄이 아주 많았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일 미터 정도 폭을 가지고 여러 가닥이 펼쳐져 있는 것도 있었고, 새들이 잘못 건들면 바로 전기 끊길 거 같은 허술한 전깃줄이 많았다. 큰 가위가 있으면 다 자르고 싶을 정도의 까맣고 굵은 전깃줄이었다. 그리고 보이는 리조트들. 아주 좋은 리조트들이 많았다. 일반 집도 렌트해서 몇 달 동안 관광객들이 사는 모양이었다. 몇 달씩 푸껫에 머물며 지내는 팔자 좋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부러웠다. 가이드 아저씨는 한국에서의 일은 잠시 접어두고 푸껫에서는 즐기라고 했지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생각이 많은 나는 뭘 하며 나도 돈을 벌어야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우리의 숙소. 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차를 타고 오며 보았던 수많은 멋진 숙소들 앞에 보라색 페인트가 드문드문 벗겨진 우리의 숙소.. 흑흑. 하지만 우리가 싼 가격에 온 걸 생각하면 이정도도 감지덕지였다. 들어가 보니 훨씬 훌륭했고, 도은이와 나의 예상대로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시간. 도시락도 먹고 우리의 귀염둥이 설동혁과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잠시 침대에 누웠는데.. 도은이와 나는 떡실신을 해 일어나보니 캄캄한 밤이었다. 더운 바람을 맞아 끈끈한 몸을 씻지도 않고 그대로 자다니. 그러고는 시장가자는 가족들 성화에 끈끈이주걱같은 몸을 이끌고 시장에 갔다.
야시장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열대과일부터 악어고기까지, 아무거나 먹기는 좀 불안하지만 충분히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쌌다. 우리가 하나투어를 통해 왔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한국인들은 하나도 없고 다들 서양인들뿐이었다. 15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니 길도 막고 불편해 각자 찢어져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도은, 나, 현우는 셋이 다니며 과일도 사먹고, 내가 태국에 오기 전부터 사려했던 색색전구를 사러 다녔다. 현우와 내가 사고 싶었기에 이것저것 가격도 물어보고 흥정도 하려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호갱스타일의 현우와 나는 깎아달란 말도 잘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옆에 있는 도은이가 우리를 답답해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선물백화점에서 물건 값도 못 물어보던 우리 집 공식 아기 김도은이 여행을 다녀온 후 많이 야물어졌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은이가 나섰지만 결국 원하는 가격을 못 얻고 우리가 오늘만 이 시장에 오는 게 아닐거 라며 다음날을 기약하고 먹을거리를 먹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결국 시장에 다시는 올 수 없었다...) 그러다 한 주점에 앉아 많이 시켜 많이 먹는 한국인들의 스타일대로 많은 맥주와 음식을 먹은 뒤 숙소로 돌아와 개운한 샤워를 한 후 꿀맛 같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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