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면서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곳에 눈길이 가는 경우가 있다.
잘 가꾸어진 선산을 볼 때면 죽은 자리까지 편안하고 안락해보여
내 마음까지 따뜻해질 때도 있다.
우리는 공주에서 천안을 가던 길이었다.
사방이 눈으로 덮인 지 하루가 지났고,
우리가 지나는 국도변에는 아직은 안전을 위협하는 빙판길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럼에도 우린 친구들 모임에 합류하기 위하여
직장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순천에서 천안까지 오는 착한 친구를 마중하러 가던 길이었다.
파평윤씨 재실을 택한 건
그곳이 천안 가는 길에 있다는 것,
이 다음에 들르고자 하는 천안 관촉사와 지척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애초에 지도에서 가고자 하는 곳은 '명재고택'이었는데
네비에도 나오지 않는 그곳을 찾는다는 것이 당도하고 보니
파평윤씨 재실이었던 것이다.
파평윤씨~~
지난 2002년 잘 보존된 임산부 미라로 잠시 들었던 적이 있었던 성씨이다.
그때의 미라는 뱃속 태아와 함께 발견되었는데
출산 중 자궁파열에 따른 임산부 미라로 뱃속의 남아는 물론
의복, 편지 등이 한꺼번에 발견되어 세상의 관심을 촉발시킨 적이 있었다.
파평윤씨에 대해서 아는 바는 그정도가 전부였는데
오늘 뜻하지 않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위치하고 있는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입구에 재실에 대한 표지판이 있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마련한 집이라고 한다.
이 재실은 윤창세가 윤돈의 묘소를 이곳에 정하면서부터 만들어진 곳인데
1988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사당과 맞은편에 위치한 성경재는 한말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관리인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는 출타중이었는지 조용하였다.
아무도 없는 남의 집 마당에서
서울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순천에서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수다 삼매경 중...
미처 털지 못한 콩대들이 병사 앞에 있었다.
콩꼬투리에는 콩이 가득이다.
재실 옆에는 이렇게 선영이 있다.
파평윤씨는 조선시대에 과거에 332명을 급제시킨 집안이라고 한다.
이는 당시 과거 급제자의 2.20%에 해당된다고 하니
상당한 세도가 집안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왕비로 많이 간택을 시킨 정치적인 집안이었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또 다른 영사당을 보았다.
마을도 작고,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고,
무엇보다 사람의 자취가 보이지 않아
위의 영사당과 무엇이 다른지 확인이 불가능하였다.
안채와 솟을대문으로 구성된 것으로 미루어 이곳이 윤진의 고택이 아닐까
잠시 추측해 보았을 뿐....
그저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작은 부분일 터인데
이렇게 기록해놓고보니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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