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부석사에 다녀왔습니다.
부석사 입구 은행나무를 보러 갔는데 은행잎이 벌써 다 떨어져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더군요. 하지만 애기단풍이 곱게 물든 건 절정이라서 그나마의 위안을 삼고 왔습니다.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에 있습니다. 영주에서도 부석사는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바로 옆에 있지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태백과 영월이 나옵니다. 전라도 동쪽 내가 사는 곳에서는 남해고속도로, 중부, 중앙고속도로 등 고속도로만도 세 곳을 지나야 하고, 승용차로 아무리 빨리 달려도 네 시간이 넘게 걸리는....참 먼 길입니다. 하루만에 다녀오려니 새벽밥을 해 먹고 출발했습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 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 층 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 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案山)* 이 지니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 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 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최순우님의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부석사는 어쩐지 가봐야 할 것 같은, 가보기 어려워서 더 갈증이 날 정도로 꼭 가고 싶은 절집이 되었다.
부석사를 처음 간 것은 십 년도 더 전이었다. 11월 1일 개교기념일을 맞아 직원여행으로 간 것이었다. 백암온천에서 일 박을 한 후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당도하였더니 꽃보다 붉은 단풍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푸른 하늘과, 길을 가득 덮은 노란 은행잎, 애기단풍의 붉음이 주는 화려함, 그리고 단청을 칠하지 않아 더 운치있고 멋스러운 무량수전이 한 폭의 그림같았다.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여행으로 부석은 가을이 되면 늘 가고싶은 곳이 되었다.
부석사 가는 길 이정표 옆에는 이런 연못이 있더라.
예전에는 없던 건데 최근에 단장한 모양이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으면서도 작은 폭포와, 분수, 어우러진 단풍이 애초 거기 있었던 것처럼 맞춤이다. 보기좋다.
이 돌계단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었어.
나랑 동학년이던 김용택, 오영희 샘은 어디서 잘 들 살고 계시려나?
시간이 많이도 흘러버렸다. ㅠㅠ
볼때마다 의문이다.
소백산 부석사가 아니고 왜 태백산 부석사일까?
지도를 놓고 보면 소백산 국립공원이 태백산 도립공원보다 부석사와는 더 가까운 듯 보이는데....
늦가을 느낌 물씬 난다.
시몬, 낙엽 밟는 발자욱 소리가 너는 들리느냐?
시 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주말이라 사람 많더군요.
감동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법.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이 또 찾은 절집이 부석사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멀리 안양문이 보입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오래 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영주시에는 국보 7개, 보물이 24개나 자리하는 유서깊은 고장이랍니다.
그런데 이 부석사에 무려 국보가 5개나 있답니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국보 제 17호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 주고 부처님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리 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 대사이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가 걸린 편액이 보이네요.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같은 강상는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일이 말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광경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있네.
무량수전 뒤편 길을 이용하여 조사당 오르는 길
단풍이 한창이다.
조사당 안의 벽화는 국보 제 19호로 지정되었다는데 볼 수는 없었다.
의상대사가 쓰던 지팡이를 꽂은 게 지금도 이어진다는 선비화가 입구에 있다.
이것이 바로 선비화
물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신비한 나무라고 한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지폐가 가득이네
무량수전을 옆에서 비스듬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삼층석탑이 있다.
신라시대 석탑이라고 한다.
낡은 듯, 닳아진 듯 단청을 칠하지 않아 더 독특하고 아름다운 무량수전을 뒤로 하고 내려 오는 길, 행복함이 절로 묻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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