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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삶과 문학

뒷북치기

 

뒷북치기

 

양선희

 

이제 돌이 갓 지났을까? 겨우 걸음을 옮기는 앙증맞은 아이가 누나로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탕으로 들어선다. 미끄럼 방지용 양말을 신고 있는 걸 보니 주변에 엄마가 있는 듯 한데, 눈에 들어오진 않는다. 맞은편 탕에 앉아있던 50대의 아주머니가 아이를 보자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깍궁얼러본다. 가까이 와 보라는 손짓에 그 아이는 누나가 있는 건너편으로 가 버린다. 작은 몸짓 치고는 걸음걸이가 야무지다. 아이의 움직임을 따라 가다 보니 나 역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의 중심이 오롯이 나였던, 그래서 아주 잠깐 나의 부재도 못 견뎌하던 작고 부드러운 살결의 미숙한 엄마였던 때가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세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느라 나는 늘 바빴다. 직장 일도, 가정 일도 어느 것 하나 잘하지 못하면서 동동거리기 일쑤였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을 깨워 겨우 옷을 입힌다. 커다란 그릇에 달걀 후라기 한 개를 부쳐서 넣고, 참기름 한 술에 밥 한 공기를 넣고 비비면 그게 아침밥이 되었다. 식탁 옆에 줄줄 세워놓고 큰 아이 한 입, 작은 아이 한 입, 그리고 또 막내 한 입, 그리고 나 한 입....다시 또 큰 아이의 차례가 되었으나 큰 아이, 밥알을 세는지 아직도 입 안에는 밥이 가득하다. 겨우 겨우 밥 한 술씩을 떠서 먹인 후 큰 아이는 아파트 놀이방으로, 둘째, 셋째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딸린 종일반으로 데려다주고 서둘러 출근을 하였다. 교실이 있는 4층 계단까지 바삐 오르노라면 뒷골이 당기면서 현기증이 일곤 했다. 아침은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쟁같은 세월이었다. 매주 편지를 보내오는 이제 중학생이 된 제자에게 답장 한 장 쓸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한 세월이었다.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는 일도,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큰맘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감기라도 한 번 걸리고 보면, 절대로 혼자 앓고 넘어가는 법이 없이 줄줄이 사탕으로 옮기는 바람에 어느 해 겨울은 한 달의 반을 이비인후과로 출근해야 했다. 자가운전을 못하던 시절이라 택시를 타고 오가노라면 차가운 겨울 바람이 아이들의 보드라운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종일반 유치원이 끝나는 시각은 오후 5, 아무리 바쁘게 퇴근을 서둘러도 그 시각을 맞추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은 학교 부근의 길가에서 서성거렸다. 언젠가는 문구점에 있는 8,000원짜리 인형을 사주지 않는다고 작은 아이가 길가에 다리를 뻗고 앉은 채 울고 있었다. 수중에 달랑 100원짜리 동전 하나 밖에 없었던 큰 아이 역시 작은 아이의 심술을 당해내지 못해 함께 울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집에 와서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면 금방 열두시가 되곤 했다. 하루만 지나면 수북이 쌓이는 빨래, 잠시 자리를 비우면 어김없이 표시나는 엄마이자 아내의 자리. 밤 열두시 무렵에야 빨래를 털어 너는 날이 끝도 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요즈음 나는 혼자 저녁을 먹을 때가 많다. 회식이 잦은 남편, 여고생인 두 딸아이는 밤 열시가 넘어 귀가한다. 1의 막내는 이른 저녁을 먹고 학원 가기 바쁘다. 아이 키우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를 보곤 둘째 시누이 늘 그러셨다. 돌아보면 그 때가 제일 좋은 법이라고……. 그때는 그 말의 진실을 몰랐었다. 아이를 배 안에 품고 있을 때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할 일이 두려웠다. 햇살처럼 환하고 보드라운 뺨을 가진 아이를 안고 다니는 새내기 엄마들이 부러웠다. 아이가 누워만 있을 때는 아장아장 걸음 걷는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가는 부부가 부러웠다. 뒤꽁무니 따라 다니며 치워줘야 하는 유아기 때는 학교 다니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것들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는다. 얼마 후면 내 품을 떠날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묶어두고 싶다.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만 같았던 전쟁같던 나날이 지나고 너무나 한가해진 요즘에야 나는 시누이가 하셨던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렇게 뒷북만 치는 게 인생이란 말이던가. 세월이 좀 더 흘러 아이들이 장성하여 내 품을 떠나고 나면 나는 또 아직은 품 안의 자식을 가진 오늘의 나를 분명 그리워 할 것이다.

 

아이는 둥근 통 안에서 물장구를 친다. 꺄르르~퍼지는 웃음소리에 목욕탕 안의 사람들의 얼굴에 절로 웃음꽃이 번진다. 아이의 엄마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부벼댄다. 간간이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행복이 엄마와 아이의 보드라운 뺨에 가득하다. 아이는 곧 자랄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다니면서 자기 주장이 강해질 것이다. 엄마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것이 친구가, 때로는 이성의 친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자라는만큼 엄마는 흰머리가 늘어가고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아주 조금 깨닫게 되고 보면, 그녀 아마도 쉰을 코 앞에 두고 있지나 않을까?

 

한비야씨가 그랬던가? 인생을 80, 사람의 인생을 하루라고 친다면 마흔 중반인 자신은 이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을 마시는 쯤의 시간에 와 있다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오후 시간과 일몰이 아름다운 저녁, 그리고 휴식의 밤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은 시간이 아니라는 말일게다. 청춘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닐지라도 아직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오늘의 내 모습을 사랑하리라. 뒷북치기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더 아쉽고 소중한 오늘이 아닐까? 청춘의 열병으로 흔들리지 않고, 세월의 흐름에 조급해하지도 않고, 흐르는대로 흘러가다 보면 인생의 큰 물줄기와 만나게 되리라.

 

살아있음이 감사한 오늘이다.(2008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