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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삶과 문학

스승의 날을 보내며

스승의 날

 

 

 

또 스승의 날이 되었다. 교직생활 25, 제자의 눈보다는 교사의 눈으로 이 날을 바라보게 된다. 학교를 다닌 시간이 16년이었는데 그 보다 더 오래 선생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작년에 가르친 아이들 중 몇 명이 수업하고 있는 교실로 찾아왔다. 각자 쓴 편지를 주고, 나를 껴안아준다. 그리고 복도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한다. 올해 담임선생님이 시키셨을까? 절하는 모양이 제법 의젓하다. 이내 스승의 은혜합창이 이어진다.

 

스승의 은혜 노래는 어렵다. 아이들이 잘 부르지 못한다. 못하는 아이들을 따라 나도 함께 부른다. 아이들보다 내 목소리가 훨씬 크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내 스승님들을 생각한다. 학창시절. 짧은 것 같지만, 하루하루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아팠던 기억도, 어려웠던 기억도, 남모르게 속상했던 기억들의 하루하루가 엮어져있다. 시간이라는 너무나 위대한 괴물이 삼켜버린 지금, 지나간 학창시절은 추억이라는 특별한 옷을 입고 아름다웠던 기억들도 재구성되고 만다.

 

나는 누구보다 스승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고마운 그 분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분들을 잊고 지내면서, 해마다 이런 노래를 듣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내 주변의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의 대부분이 인근 여고로 빠질 때 중3 담임선생님은 그러셨다. ‘용꼬리가 되느니 뱀머리가 되는 게 낫다. 선생님과 하느님을 동격으로 여기던 나는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광양여고를 왔다. 푸른 보리밭 한 가운데 흰색 건물만 달랑 세워져 있었다. 당연히 운동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푸른 보리밭 천지였다. 청보리 물결이 바람에 날리던 날, 단골 사진관에서 사진기를 빌려 찍은 사진은 지금도 앨범 한 귀퉁이에서 그 날을 추억하게 한다.

 

머리회귀붕대법’, ‘우로 봐’, ‘받들어 총같은 군사용어가 버젓이 학교안의 교련 시간을 차지하던 그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었기에 그런 훈련들도 즐거움으로 기억할 수 있었다. 연약한 몸으로 제식훈련을 지도하던 한송임 선생님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2때 드디어 우리에게도 운동장이 생겼다. 그동안 체육시간이면 여중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를 빌려 사용하느라 눈치 보던 설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보리밭을 개간하여 만든 운동장에서는 끊임없이 돌이 나오고, 풀이 자랐다. 여름방학 등교일이면 오전 내내 운동장의 풀뽑기 과제가 주어졌다. 작렬하던 태양아래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 뽑아내도 또 자라는 질긴 잡초의 생명력을 욕하곤 했다.

 

1 때 두발 자율화가 되었다. 모두가 똑같은 단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커트머리가 대유행이었다. 2 때는 교복자율화가 되었다. 초록색 플레어스커트에 나비 리본으로 마무리하던 교복은 추억이 되었다. 사복은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반면, 계층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이게 한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제복을 벗어던지고 난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내게 별로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때의 교복을 남겨두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선생님은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이셨다. 우리를 따라 여고로 옮겨오셨고, 생물과목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1학기 때까지 가르쳐주셨다. 그 분의 교육방법은 나랑 아주 잘 맞았다. 암기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던 나는 한 번의 시험 때 50문제씩 내던 생물 과목에서 거의 만점을 받았다. 그 분의 스타일대로 나는 학력교사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생물 선생님이 바뀌었다.

 

여우에게 길들여진 어린왕자처럼 나는 새 선생님께 적응하지 못했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초임으로 오신 총각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 분의 교수방법에 대한 반감으로 나는 마지막 한 학기 동안 생물 공부를 하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그토록 자신하던 과목에서 점수를 얻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또 나는 고3 담임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그 분이 아니었더라면 대학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인 건 나는 선생님이 시키면 그대로 따라하는 범생이였다는 것.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 스칼렛 오하라를 닮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 분의 인도에 따라 나는 낯선 고장에서 대학을 다니고, 내 어릴 때의 꿈인 선생님이 되어 25년째 살아가고 있다.

 

흔히 억겁의 인연이라는 말을 한다. 불가에서는 가로, 세로 8km인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넣어두고 100년에 하나씩 꺼내 먹었을 때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의 시간이라고 한다. 하루를 동행하는 인연은 전생에 2,000겁의 인연이 있었다고 하고, 친구의 인연은 5,000~6,000겁의 인연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는 인연은 몇 겁의 인연을 지녔을까?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많았던 궁핍의 시간이었지만 인생의 방향점을 알려주셨던 좋은 선생님,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나랑 똑 닮은 내 친구가 있었기에 나의 여고시절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나는 어떤 스승으로 아이들에게 자리매김 될까? 두렵고 어려운 자리에 참 오래도 있었다. 아이들의 하루를 책임지고, 우리 반의 일 년을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 어떤 아이는 나랑 천생연분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나랑 그리 좋은 인연이 되지 못한 채 일 년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농부의 발자국을 듣고 자라는 농작물처럼 교사의 숨결 하나하나에 따라 동그라미가 되기도 하고, 세모, 혹은 네모가 되기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온전한 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책임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스승의 날이 되면 늘 떠오르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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