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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삶과 문학

살구 안녕!

 

 

 

살구, 안녕!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기숙사로, 둘째딸이 대학생이 되어 떠나면서 졸지에 우리 집에는 나와 남편만 남았다. 한때 우리 집에는 여섯 명이나 되는 가족이 살았다. 남들보다 아이가 한 명 많고, 뒤늦게 우리 가족으로 합류한 시어머님까지 여섯 명의 식구가 바글바글 살았다. 국 냄비의 크기는 웬만한 찜통 크기였고, 20인분의 밥을 할 수 있는 압력솥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큰 딸이 떠났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었고, 사람으로 태어나 보내라는 서울로 가게 되어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떠남이었다.

두번째는 시어머님이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만 6년을 우리 집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3칸짜리 우리 집으로 팔순이 훨씬 넘은 시어머님이 이사오신 날, 어머니 살 방이 없었다. 우리 부부 한 칸, 딸 두 명이 한 칸,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들과 남은 방 한 칸을 쓰게 되었다. 다리가 많이 불편한 어머니는 침대에서의 생활도 불가능하여 아들침대 옆 바닥에 자리를 잡으셨다.

코를 고시는 어머니와 한 방을 쓰게 된 아들은 별 별 핑계를 다 대면서 할머니와의 동거를 피하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같이 정 붙이며 산 것도 아니어서 아들의 그런 투정을 매번 야단만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들은 누나 방에서 수다 떨다가 잠든 척 하기도 하고, 안방으로 쳐 들어와 함께 자겠다고도 했다. ‘너에게 엄마가 소중한 것처럼 아빠에게도 엄마는 귀한 사람이니까 너도 할머니를 귀히 여겨야 한다고 타일러 보지만 아들을 안정되지 못하고 밤마다 이 방 저 방을 떠돌며 눈치를 보곤 했다.

결국 어머님이 집에 오신 지 6개월 만에 우리는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또 그렇게 함께 산지 6년 만에 어머니의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어, 결국엔 요양원으로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일 년. 둘째딸과 막내가 한꺼번에 떠난 것이다.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 그 많던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방 저 방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뒤졌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딸이 키우던 열대어 두 마리와 아들이 공들여 키우던 살구딩고라는 이름의 고슴도치 두 마리가 남았다. 열대어는 나이가 다 되어선지 얼마 후에 죽고, 오늘 고슴도치 중 살구가 죽었다.

고슴도치는 까다로운 동물이다. 예민하여 주변에 사람이라도 오면 가시를 사정없이 세운다. 억지로 만졌다가는 찔려 피를 보기도 한다. “~ 거리며 경계하는 빛을 보이는 걸 보면 고슴도치가 그러하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 놀라곤 한다. 어두운 걸 좋아하여 낮에는 집 속에 있어 통 볼 수도 없다. 그래도 한밤중에 슬쩍 가보면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쉴 새 없이 탄다. 냄새도 적고, 크게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어서 저녁으로 물과 먹이를 주며 돌봐준 것이 이제 두 달 남짓이다.

그런데 요 녀석 보름 전부터 심하게 아팠나 보다. 아침, 저녁 밥 주는 것이 고슴도치 키우는 것의 전부로 알고 있던 나는 구내염이 너무 심해져서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도 몰랐던 것이다. 주말에 집에 온 아들에 의해 동물병원에 갔을 때에는 이미 입안의 염증이 너무나 심해져서 약으로는 치료가 안 될 정도의 상태가 된 다음이었다. 개나 고양이는 마취하고 수술할 수 있으나, 고슴도치나 토끼는 아직은 그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만 듣고 왔을 뿐이다.

말 못하는 짐승이 눈만 깜박거렸다. 힘이 다 빠졌는지 주사기에 물을 담아 먹이는데도 넘기지를 못했다.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 상황인 된 고슴도치는 그동안 병원을 두 번 더 갔음에도 오늘 죽은 것이다. 너무 미안해서 차마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주말이라 집에 들른 아들은 그런 살구를 보고는 눈물만 줄줄 흘렸다. 아들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나를 믿고 맡겼는데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다는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살구는 그렇게 우리와 이별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정 붙이기 나름인가 보다. 나는 동물을 잘 키우지 못한다. 동물을 위해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일에 자신이 없어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주면서 나에게 웃어주지도, 나를 반겨주지도 않는 그 녀석들에게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말 못하는 짐승과 소통하지 못하여 그렇게 떠나보낸 살구때문에 내내 가슴이 아팠다.

살면서 나는 더 많은 이별과 만나게 될 것이다. 정붙이고 지내면 동물과의 이별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과, 더구나 내가 사랑한 사람들과의 이별은 더 많이 힘들고 아플 것이다. 이미 나는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과 이별했다. 나를 귀히 여겨 주셨던 시아버님과도, 내 아들을 당신의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해 주셨던 시숙님과도, 애증이 교차하는 큰아버지와, 언제나 사랑으로만 기억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가슴 한 쪽이 베어나가던 아픔도 시간의 위대함에 묻어둔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별의 횟수는 더 잦아질 것이다. 나는 이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벌써부터 나는 두렵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아끼고 사랑하자. 내 주변의 작은 풀꽃에도,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내 곁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 놀아주고 챙겨주는 친구와 동료들에게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가족, 형제, 우리 엄마와도. 지금, 현재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사랑하리라.

도치야!! 부디 좋은 곳으로 가거라. 살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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