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평소 좀 둔한 사람이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게 된다.
담장너머 붉은 장미의 화려함에 눈이 가고
누가 씨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자란
마가렛이, 금계국이 바람에 흔들리는 환상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오늘은 때이른 개망초가 핀 것도 보았다.
지난 주말 친구랑 일몰이 아름다운 여수 와온에 있는
모리아 찻집에 가 보았다.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대로 가다가
오래전 와보고 뜸했던 찻집 '모리아'에 간 것이다.
노란 금계국이, 하얀 마가렛이 보인다.
노란 색 꽃창포가 지천이다.
오랜만에 보는 모리아는 예전 기억 그대로였다.
부지런한 주인장이 구석구석 꼼꼼하게 잘 가꿔둔 덕에
눈이 행복했다.
나 혼자 보았더라면 '예전과 같네...'정도의 감흥에 머물렀을 터인데
이곳을 처음 와 본다는 내 친구의 행복해하는 모습 때문에
나까지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는 듯 했다.
30여 분만 나오면 이리 좋은 곳이 많은데.....
진즉 친구를 데리고 콧바람을 좀 쐬어볼 걸...
좋아하는 친구 모습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분홍이 선명한 패랭이꽃과 낮에 피는 달맞이꽃, 분홍 달맞이
가로등을 감고 오르는 담쟁이넝쿨도, 무심하게 놓인 듯 한 장독대도 여기선 모두 예술이 된다.
우리가 자리잡을 때만 거의 비어었었는데 차마시고 나오다 보니 저 빈 자리가 모두 누군가의 차지가 되어 있더라.
내 친구 라미는 나와 같은 동네산다.
내가 이곳 보성으로 발령나기 전에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만나서
차도 마시고, 밤이면 운동도 함께 하는 사이였다.
그런 내가 이곳으로 발령나 버리는 바람에 혼자 운동하고,
자주 만날 수 없음을 남편만큼이나 아쉬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지나간 한 시절,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고
나는 말했다.
"대학 2학년, 광주 동명동 자취방"이라고.
동명동 자취방은 지숙이와 라미가 살던 자취방이었다.
그 방에 갈 곳 없었던 내가 끼어서 살면서 라미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실상 그녀와 나는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같은 반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친한 친구의 친구여서 자주 부딪히는 사이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지숙이는 고3때 같은 반 친구였고,
그 친구의 권유에 따라 살림을 합치게 되면서 자연스레 라미랑도 친하게 된 것이다.
궁핍하고 외로웠던 내 대학생활을 빛나는 시절로 기억나게 하는
여러 기억들은 라미와 지숙이와 함께 생긴 추억이 많다.
그때만큼은 내가 궁핍하다는 걸 잊게 할만큼
내게로 향한 그들의 배려는 따스했으며,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가고 싶었던...
그래서 얼른 그 아이들과 놀고 싶었던,
스물 한 살의 내가 거기 있었다.
함께 자취했던 지숙이는 서울서 목사님이 되었다.
신학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스물 한 살 때 교회를 다닌 것도 아니어서
당시의 지숙에게 '목사님의 싹'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게 뜻한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목사님이 된 지숙이를 통해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지숙이는 사는 곳이 확연히 다르기에 당연하게도 자주 못 만난다.
허나 라미는 결혼 후에도 이렇듯 가까이 사는 사이가 되어
인생의 좋은 길잡이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모리아에서도 행복해하는 라미 얼굴 보면서 덩달아 나까지 행복해졌다.
와온은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고,
이 곳 모리아에서도 일몰의 장관을 볼 수 있을 터인데
일몰이 올때까지 기다리진 못했다.
좋은 친구와의 행복한 시간으로
오월이 참 잘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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