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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감동이 있는 글

착지(좋은 수필 옮겨 쓴 글)

 

착지(着地) 
                       

                                         정성화 

 갖다놓은 보리차 한 병이 어느새 다 비워져 있었다. 내가 다가서는 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남편은 벽을 향해 누운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감고 있는 그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는 걸 보았다.
아침 식사를 하던 그가 슬며시 수저를 내려놓으며, 아무래도 이번 시험도 제대로 못 본 것 같다고 했을 때, 나는 그저 수험생 특유의 엄살이려니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짙어져 갔다. 배가 고프지 않다며 점심을 거르더니 급기야 안방 벽 아래에 길게 누워버린 것이었다. 그의 몸 위로 누군가 절망이라는 소금을 켜켜이 뿌려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외롭고 힘든 승선생활을 이십 년 이상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에 도선사가 되려는 꿈이 있어서였다. 도선사란 부두로 입항하거나 부두에서 출항하는 선박을 안내하고 접안과 이안을 지휘하는 사람이다. 육천 톤 이상의 선박에서 오년 이상을 선장으로 근무한 사람들만이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기에, 그 시험을 치러온 사람들은 대개 사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있다. 집 주소와 집 전화번호도 가물가물해지는 나이, 냉장고 문을 열고도 자신이 뭘 꺼내러 왔는지 한참 생각해 봐야 하는 나이다. 

 무더운 칠월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 시험을 치러갈 때마다 소매가 긴 옷을 꺼내 입었다. 자꾸 한기가 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응시생이 그렇게 입고 오더라고도 했다. 한여름에 소매 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온종일 벌벌 떨어가며 치는 시험이라니…

 오랫동안 시험공부를 해온 그였기에, 제때 원서나 내고 시험 치는 날짜만 놓치지 않는다면 재깍 붙을 시험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도선사라는 열매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가 두 번째 시험을 치러갈 때만 해도 나는 여유있게 웃으며 말했다.
“보소, 장대 길이가 좀 짧다 싶거들랑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보소. 그러면 안 되겠능교.”
그의 장대가 짧았던지 아니면 휘두르는 힘이 약해서였는지, 그는 다시 낙방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짐을 꾸려 바다로 되돌아갔다. 합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지운 이는 어쩌면 바다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직은 바다가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고. 그러는 동안 내 마음속에도 한 가지 믿음이 생겨났다. 그를 위한 열매가 아직 그대로 매달려 있을 거라는 믿음이, 성실한 그를 위해 신(神)이 어느 가지 끝엔가 까치밥 하나쯤 남겨 두었으리라는 믿음이.

 그가 오랫동안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도선사가 안 되어도 좋으니 더 이상 고생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어느새 그와 나는 이인삼각이 되어 도선사라는 목표물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를 돕는 협력자가 아니었다. 나야말로 남편을 입시 감옥에 감금해둔 채 절대 풀어주지 않은 냉정한 형리였던 것이다. 오히려 그가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할까봐 오며가며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망이라는 나무는 하루 만에 다 자라는 나무였다. 아침나절만 해도 어린 줄기를 보이던 나무가 저녁 무렵에는 어느새 온 집에 절망의 가지를 드리울 정도가 되었다. 나는 그 가지에 열린 회한의 열매를 보았다. 그가 만일 이번에도 낙방을 한다면 아무래도 나의 박덕함 때문이리라. 내가 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잔뜩 모양이 일그러진 채 시퍼런 빛을 띤 분노의 열매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지에 매달려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체념의 열매를 보면서 목이 메여왔다. 그냥 길게 누워버리고 싶었다, 나도 그 절망의 나무 아래에. 

 다음 날이면 시험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그의 고생을, 물고기 입에서 뽀글대며 올라오는 기포 몇 방울마냥 그냥 날려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처 입은 한 마리 짐승처럼 웅크린 채 눈도 뜨지 않는 그를 다시 바다로 내보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상을 펴고 정한수 한 그릇을 올렸다. 집에 있는 과일도 모두 꺼내어 씻은 뒤 상에 올렸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 엎드렸다. 정한수 한 그릇보다 더 많았을 그의 땀을 부디 기억해 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붉은 과일 속에 또렷이 들어있는 씨처럼 그의 오랜 노력이 부디 결실을 맺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 사람도 남들처럼 땅을 디디며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신이 원하신다면 나는 그를 위해 기꺼이 노둣돌이 되겠노라고도 했다.

 쉼 없이 절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양쪽 허벅지가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왔다. 이제 그만 조르고 바위처럼 침묵한 채 있어보라는 신의 말씀 같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가 그의 낙방을 위로하기 위해 한 전화일 듯싶었다.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 해양수산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

 그것은 이제 그가 땅 위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망망대해가 아닌 땅 위에서 자동차도 보고 사람도 보고 꽃과 나무도 마음껏 보며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고맙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합격을 알려준 그 사람이 고마웠고, 또록또록한 음성을 무사히 내 귀까지 전해준 우리 집 전화기도 고마웠다.
전화기를 든 채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어느새 거실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의 두 다리가 먼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