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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좋다(법정 스님의 글에서)

있는 그대로가 좋다

                                                              

법정​

 

 

온 천지가 꽃이다. 풀과 나무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속뜰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철 따라 꽃이 핀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제 철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고 삭막하겠는가. 이 어디서 온 눈부신 꽃들인가. 꽃은 하루 아침에 우연히 피지 않는다. 여름철의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그리고 모진 겨울 추위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세월을 꽃으로 열어 보이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입만 열면 경제와 돈타령만 늘어놓느라고 자신이 지닌 아름다운 속뜰을 열 줄을 모른다. 경제에만 정신을 빼앗겨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성이 소멸되어 간다고 걱정한다. 사람의 감성이 메말라간다고 한다. 그러면 무엇이 인간성을 이루는 감성을 키우는가. 사람이 타고난 본성을, 그리고 사람다운 특성을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철 따라 꽃이 피어나도 볼 줄을 모르고 달이 뜨는지 기우는지 자연현상에 아예 관심이 없다. 이것이 무엇에 홀리거나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증상이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원초적인 터전이다. 생명의 원천인 이런 자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점점 인간성이 고갈되고 인간의 감성이 녹슨다. 그래서 박제된 인간, 숨쉬는 미이라가 되어간다.

 봄철에는 꽃을 보러 멀리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오고 가는 길가에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손바닥만한 뜰에서, 또는 돌층계 틈에서도 꽃은 핀다. 건성으로 스쳐가지 말고 그 곁에서 유심히 들여다 보라. 꽃잎 하나하나, 꽃술과 꽃받침까지도 놓치지 말고 낱낱이 살펴 보라. 그리고 꽃이 놀라지 않도록 알맞은 거리에서 꽃향기를 들어 보라. 아름다운 세상이 결코 먼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때로는 꽃 앞에서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눠 보라. 짐이 훨씬 가벼워지고, 꽃한테서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물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그 사물을 닮아 간다. 꽃을 가까이하면 꽃 같은 인생이 된다. 이것이 신비스런 우주의 조화다.

 누구나 바라는 그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 속에서 우러난다. 오늘 내가 겪는 불행이나 불운을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가 곧 불행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 생각과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순간 그가 지닌 생각대로 되어 간다. 이것이 업(카르마)의 흐름이요, 그 법칙이다.

 사람에게는 그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우주가 그에게 준 선물이며 그 자신의 보물이다. 그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사고가 받쳐 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마다 잘 풀린다. 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되고 일마다 꼬인다. 이 세상은 공평무사하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스물 네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진다. 이 귀중한 우주의 선물을 우리는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긍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부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밝은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어두운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시시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닌 생각이 우리 집안을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들어간다. 명심할 일이다.

 다시 꽃 이야기로 돌아가자.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그 누구도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풀이 지닌 특성과 그 나무가 지닌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다. 풀과 나무들은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신비를 꽃피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들의 분수에 맞도록 열어 보인다.

 옛 스승(임제선사)은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되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피면 된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이런 도리를 이 봄철에 꽃한테서 배우라.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서 옛 스승은 다시 말한다.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꾸미지 말라. 있는 그대로가 좋다.”
여기에서 말한 '일 없는 사람'은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이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 일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 일에 눈멀지 않고 그 일을 통해서 자유로워진 사람을 가리킨다.
억지로 꾸미려 하지 말라. 아름다움이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가 그만이 지닌 그 특성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철없는 사람이 꽃철에 철없는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내 곁에서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