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초라한 자리를 비워 드립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전남교육가족 여러분!
저는 2013년 12월 31일자로 명예퇴임을 하고 정들었던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감사하면서 행복합니다.
1975년 유신정권의 서정쇄신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을 때 약관의 나이에
공직에 입문하여 격동의 40여년을 전남교육과 함께 했습니다.
꽤나 긴 여정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재직 중 열한분의 교육감님을 모셨고
전남의 학생수는 99만명에서 24만명으로, 학교수는 1365개교에서 834개교로,
교육가족수도 2만6천여명에서 1만9천여명으로 줄었습니다.
흘러간 시간만큼 참으로 많이도 변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변화의 물결이 다가 올 것입니다.
이제 떠나면서 제게 맡겨진 소임을 다했는지 되돌아보니 한없는 아쉬움만 남습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으며 괴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보람을 느끼며
지내 온 지난 세월이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反)”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이라 했습니다.
귀한 인연으로 우리는 만났지만 언젠가는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난다는
불가의 가르침대로 새털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떠나는 입장에서 저는 새로운 시작으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에게
몇 가지를 다짐하려고 합니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는 것이고, 자기를 이기는 것은 강한 것이다.”라는
도덕경의 금언과, “부드러움은 강한 사람으로부터만 기대될 수 있다”는 명언을
늘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동남아시아 어느 지역에는 원숭이를 잡는 독특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나무에 묶어둔 상자 안에 바나나를 넣고 작은 구멍을 뚫어 둡니다.
원숭이가 그 작은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고 바나나를 움켜쥐면 손을 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람이 원숭이를 잡으러 오는데도 원숭이는 팔짝팔짝 뛰기만 할 뿐,
바나나를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바나나를 놓으면 손을 뺄 수가 있음에도 결국 잡히고 만답니다.
인간은 수많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숭이 이야기는, 이러한 욕망들을 바나나처럼 움켜쥐고 발버둥 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그 바나나를 놓아 버리고,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애착과 미련을 버리고 꼭 잡고 있던 것을 놓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개념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많이 가진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만 가지면 되는데 우리는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만족은 소유의 문제도 성취의 문제도 아니고, 밖이 아니라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랍니다.
저는,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을 사랑하면
불행해 진다는 것도 늘 염두에 두겠습니다.
인생에서 큰 불행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조실부모(早失父母), 소년등과(少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무전(老年無錢)이
그것인데, 국가에서 주는 적지 않은 연금까지 받게 되는 저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사람이 언제부터 늙는가"라는 질문에
“호기심이 없어질 때부터”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경영학과 정치학, 역사학의 연구에 이어 만년에는 페루의 미술을 공부하였습니다.
저도 늘 호기심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전남교육으로 부터 분에 넘치는 크나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전남교육이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해 가며 살고 싶습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전남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여러분의 노고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은 저에게 슬픈 이별이 아닌 행복한 졸업식과 새로운 출발의 날입니다.
혹여, 저의 불찰로 마음에 상처를 갖게 된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용서를
구하면서 우리들의 아름다운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에게도 석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은 꼭 찾아옵니다.
저의 부끄럽고 초라한 자리를 비워 드리고 먼저 가 있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3년 12월 31일
나주공공도서관 한택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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