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가족이 생겼다. 어미 잃은 아기고양이가 구조와 임시보호의 손길들을 거쳐 내게로 왔다. 연둣빛 밭 한가운데서 발견된 아이라 하여, 구조하신 분이 연두라 이름 붙여주셨다.
처음 우리 집으로 왔을 때 연두의 몸집은 내 발보다 더 작았다. 아랫마을 동물병원 선생님께 보여드리니 생후 두 달이 채 안되었을 거라 하셨다. 야옹야옹 고양이답게 울지도 못하고 ‘빼끄 빼끄’ 소리를 내던 풋것. 배불리 먹고 방방 뛰어놀다 졸리면 치맛자락 안으로 파고들어 내 다리를 베개 삼아 잠들었다. 어린 생명체의 온기가 얇은 여름원피스 자락을 사이에 두고 전해지던 첫 느낌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애묘인이 아니었고 멸종고래나 동물권 등에 관심 갖고 서명해본 적도 없던 내가, 어쩌다 그렇게 한 고양이와 식구가 되었다.
함께 살게 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우리가 거주하는 섬으로 폭풍이 밀려왔다. 창밖에서 나무들이 휘어지고 창문이 부서질 듯 덜컹였어도 우린 안온했다. 이래도 될지 부끄러울 만큼 평화로웠다. 그간 집은 밤늦게 들어가 자면 되는 공간이었지만, 더는 그렇지 않았다. 난 과자나 빵조각 따위를 먹을지언정 연두를 위해선 기꺼이 부엌에 섰다. 닭고기를 삶아 결결이 찢어주고, 황태를 썰어 물에 불리고, 생선살 퓌레도 만들었다. 방울공놀이와 나비 점프, 쥐돌이인형 꼬리잡기 등 각종 놀이도 개발했다.
몇 주 전 주말이었다. 새벽녘 설핏 잠에서 깨니 어둠 저편에서 연두가 몸을 꿀렁꿀렁하며 힘겹게 토하고 있었다. 내가 잠든 새 이미 10여차례 게워내어 탈수가 온 듯했다. 닭고기를 줘도 힘없이 고개를 돌리고, 물도 입에 안 대었다. 작은 몸통을 계속 꿀렁이며 위액까지 하얗게 토하는 어린것을 보자니 마음이 미어졌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일요일에 문 여는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고양이는 다음날 입원했고, 여러 날 지나서야 기운을 차렸다.
동물병원에서 돌아오니 후배로부터 부재 중 전화가 와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리에 놀란 그녀는 나를 다독이다 “근데 언니, 기억나요?” 했다. 대학원시절 내가 ‘나 같은 사람은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안된다’며, 설령 일요일에 아이가 아파도 떼어놓고 연구실 갈 거라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도 당시엔 소영 언니라면 그럴 거라 생각했단다.
“그런 말을 했던가…” 멋쩍게 얼버무리다 문득 어릴 적 읽은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가 떠올랐다. 난초를 선물 받아 아끼며 기르다,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식물에 집착하고 있음을 깨닫고 벗에게 내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예전엔 그게 매정한 처사로 여겨졌지만 이제 이해할 것 같았다. 그분이 무소유를 지향한 것은 매정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여리디여려서였구나, 관계의 애착을 감내하기에는 더없이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지녔기에 그 고리를 이른 단계부터 끊어낸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매일 밤 현관문을 열면 고양이가 잠결에 반쯤 감긴 눈을 하고 달려나온다. 그 순간의 애틋함은 올여름 전까지 알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이다. 지금도 원고 쓰다 발치에 보드라운 온기가 느껴져 내려다보니 고양이가 발등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다. 몸에 닿는 생명체의 따스함 또한 내겐 새로운 무엇이다. 마찬가지로, 몸통을 꿀렁이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짐승 곁에서 느낀, 심장을 꿰찌르는 아픔 역시 이제껏 경험 못한 생경한 것이다. 선재했던 애틋함과 온기가 없었더라면 몰랐어도 될, 그런 고통이다. 예상컨대 나의 고양이는 언제가 되었든 인간인 나보다 일찍 세상 너머로 떠날 것이고, 그 친구의 생명이 서서히 잦아드는 순간을 겪게 될 테다. 이는 내 애착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슬픔이다.
나는 법정 스님보다 조금은 더 강해서, 혹은 더 약해서, 애착의 고리를 끊어내기보다 끌어안으려 한다. 깨어지는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두려움 없이 그것을 끌어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라지만, 각별한 대상들과의 관계 안에서 매순간 사랑의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가는 쪽을 택하련다. 아낌없이 사랑함으로써 도리어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고양이와 가족을 이루며 갖게 된 생의 지향이다.
지인이 고양이 '밤하늘'을 키우는 나를 위해 고양이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너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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