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오래 근무하고 싶어도 4년 이상 근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4년도 못 채우고 나는 9월 1일,
바로 내일부터 다른 학교에서 근무해야 한다.
지금껏 여러 번의 이동이 있었지만, 이렇게 9월발령을 받아 이동하는 건
처음이라서 많이 낯설고 어색하다.
오늘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나보다 더 서운해하는 꼬마 아이들 보노라니,
사랑은 쌍방통행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세상 어느 아이들보다 순수하고 맑은 이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99년 순환근무 만료제에 걸려 살던 곳을 떠나 여수 '개도'라는 섬에서
3년을 산 적이 있었다.
생활의 불편도 많고, 낯선 섬 문화에 당황스런 적도 있었다.
누가 섬에 가라고 쫓은 것은 아니었다.
육지 끝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통근길을 4년 정도 다녀야 도시권인 순천 들어올 수 있는 것을
섬에 가면 1년만에 올 수 있다고 하여 자원하여 간 거였다.
10살, 7살, 5살이 막 지난 세 아이들이 햇살에 바람에 쑥쑥 커가는 것이 보기 좋았으나
생활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유배지>라고 생각했던 그곳도 3년을 지나 떠나올 때는 슬펐었다.
이곳 보성에서도 가족과 떨어져 관사에서 2년 반을 살았다.
밤이면 음악듣고, 책 읽고, 이렇게 블러그에 글 쓰는 여유가 좋았다.
풍광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나가는 밤마실도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강진 영랑생가에 모란을 보러 가거나,
다산의 발자취를 찾아서 간 강진의 고성사와 보은산방을 찾거나
다향2코스 바닷길을 따라 걷거나
몽중산 다원을 구경하는 등
갑자기 떠나는 몇 사람과의 여행도 좋았다.
돌아보면 연고가 멀어져서 생활하게 되는 이런 여유도 그리 나쁜 건만은 아닌 듯 하다.
섬에 근무하던 당시, 동생이 임용고시를 광주로 할 것이냐? 전남으로 할 것이냐를 상담해왔다.
연고가 보장되지 않는 떠돌이 생활이 싫어서 광주에 정착하라고 하였다.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최선이었나 생각이 된다.
낯선 섬 개도나, 이곳 보성의 나날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했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우친다.
이근후 박사의 사계절에 따른 인생 구별법에 의하면
쉰이 넘어가면 긴' 인생의 가을'에 해당된다고 하던데,
여름에 깨우치지 못한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학교 곳곳을 돌아보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 탓인지 더 애틋해진다.
체육관....
하루의 반 이상을 머물던 교무실
배롱나무 핀 본관
11명의 귀여운 유치원아이들이 살아가는 놀이터
이 학교 와서 가장 먼저 끌렸던 소나무
텅 빈 운동장,
시설관리 선생님의 수고로움 덕분에 여름을 지났음에도 풀 한 포기가 없다.
올 봄
아름다운 회천의 봄을 만들어주는 아름드리 벚나무
지난 봄 그 벚나무 아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단체사진.
이 좋은 사람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아쉽다.
회자정리면 거자필반이라
또 만날 날 있겠지.
사는 동안 행복했었다.
오래 오래 그리움으로 회상될 것이다.
모두 모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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