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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일상의 풍경

20180414 소휴당에서의 하루

 

오래된 내 친구들이 드디어 소휴당을 찾았다.

서울에서 두 명,

순천에서 한 명,

원래는 6명의 회원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둘이 빠지고 넷만 모인 날.

금요일 퇴근 후 세컨하우스(소휴당- 웃음과 휴식이 있는 작은 집)로 들어갔기에

서울서 KTX를 타고 오는 친구 M은 순천사는 친구의 남편이 운전한 차를 타고

보성까지 들어왔다.


서울서 온 친구 M이 차 안에서부터 물은 말

"그곳에 고사리나 취나물 있어?"란다.

M과는 중학교 3학년때부터 친구이다.

네 명의 단짝친구 중 둘은 뺑뺑이(평준화) 되기 전의 전남 동부의 명문이었던 순천여고로 가고

아버지가 안 계시는 M과 동생이 셋이나 딸린 나는 중3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여 집 가까운

광양여고로 학교를 갔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담임선생님의 말씀...

"용 꼬리가 되느니 뱀 머리가 되어라"

과연 나는 뱀 머리가 되었을까? ㅋㅋ

고등학생이 된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 수업이 끝난 오후 2시에 M의 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500원씩인가를 주고 반지도 교환했고, 어머니가 일 나가시고 빈 집이었던 M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마당에 앉아 공기놀이를 주로 하며 놀았다.

그 반지 안쪽에는 각자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진선미>라는 모임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모임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M이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각에 다른 친구를 집으로 불러 모임이 따블이 되었었고

그것에 맘 상한 한 친구의 고집으로 모임은 깨지고 말았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친구 M은 서울 살면서도 유기농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주말농장을 신청하여 가꾸고

고사리나 취를 뜯는 것은 광적으로 좋아하는 친구이다.

그 친구를 위하여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뒷산에 올랐다.


 

오전에 내린 비로 모임 자체를 걱정한 게 기우였던 것처럼

밖으러 나가려고 한 순간 비가 그쳤다. 이런 행운이~~~

취나물은 많은데 뿌리째 뽑히는 것이 단점이다.

뿌리째 뽑은 취나물은 밭에다 심기로 했다.

두어시간 남짓 친구 둘과 거둔 수확물

고사리와 취나물이 한 보따리다.

꼭 먹어서 좋은 게 아니라 이런식의 봄맞이가 너무 좋다.

행복하다.



 

 

 

밤새 삶은 고사리와 취

재배한 것이 아니고 산에서 채취한 것이라선지 향이 죽인다.

양도 엄청나다.



 

비 온 뒤끝이라서 모처럼 미세먼지 없는 하늘이다.

이런 맑은 날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멀리 보이는 율포 앞바다가 아름답다.



 

 

 

저녁에는 수산물위판장에서 사 온 낙지 탕탕이와

밭에서 뽑은 파와 부추에 새우를 다져 넣고 만든 전을

안주삼아 포도주를 마셨다.

포도주 안주에는 전이 최고인 듯 하다. ㅋㅋㅋ

서울서 뒤늦게 합류한 또 다른 친구가 맛난 과일과 포도주를 가져온 덕이다.

여고 친구들의 만남이 30년 넘게 이어져 왔기에 몇 달만에 만났지만

수다는 끝이 없다.

아직은 새 사람을 들인 사람이 없기에 시댁 이야기, 자녀이야기, 남편 이야기가 밤새도록 이어진다.


건강이 나빠져서....

남편의 퇴직으로....

자녀의 길어진 구직으로....

아픈 부모님을 보는 안타까움으로...

다들 조금씩의 고단한 삶이지만 오늘 같은 날 있기에

또 다시 힘을 내 본다.


나를 나만큼이나 잘 아는 친구들과의 수다로 봄밤이 끝도 없이 길어진다.

멀리까지 찾아와주고, 함께 즐거이 놀 친구들이 고맙고 또 고마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