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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감동이 있는 글

늙는 것도 쾌사(快事)라!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백발 막대로 치려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려 우탁, [백발가])

 

지름길로 찾아온 노년. 늙는다는 것은 생의 한 단계라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 단계만큼 힘겹게 넘어가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고개'아니던가. 넘고 나면 필경 보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풍요로운 노년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늘 '노후 대책'을 이야기한다. '대책' 운운하다 보니 챙겨야 할 것이 여간 많지 않은데, 크게 정리해 보면 건강과 돈으로 귀결된다. 맞는 이야기이다. 건강해야 질 높은 노년을 보낼 수 있고, 돈이 있어야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을 다 챙겼다 해도 늙어가면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 그건 아마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 때문일 것이다. "부귀는 본디 내 가지지 못했으니 그것이 나를 찾아오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청춘은 본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인데 왜 그것마저 사라지고 없는가?" 청나라 사람 김성탄이 내뱉은 장탄식이다. 본래 내 것이었던 청춘이 날 버리고 떠나가 버린 허전함. 하나가 떠나가면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하는데, 건강으로도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묘책이 과연 있을까? 만약 있다면, 젊은 시절에 가지지 못했던 '지혜'와 '성숙'이 아닐까. 지혜롭고 성숙한 노년은 나를 편안히 하고, 남을 힘들게 만들지 않는다. 내 스스로 삶은 버거워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혜롭고 성숙한 노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을 무었일까?

 

첫째는 "끊임없는 배우기"이다. 춘추전국시대 사람인 사광은 "젊어서 공부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고, 늙어서 공부하는 것은 밤에 촛불을 켜 놓은 것과 같다. 젊어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야 없겠지만, 늙은 후에 공부해도 늦지 않다. 촛불을 밝히면 어둠은 사라지니, 계속 비춘다면 밝음을 이어갈 수 있다. 해와 초가 다르기는 하나 밝기는 마찬가지이며, 밝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맛은 더욱 진실되다."라고 하였다. 배우는 즐거움을 익히 아는 나이이기에, 노년의 배움은 삶을 더욱 즐겁게 해줄 것이다.

 

둘째는 "항상 조심하기"이다. 젊어서 실수는 만회할 시간이 있지만, 늙어서의 실수는 만회할 시간이 적다. 그러므로 내 삶은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군자는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여색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에는 혈기가 왕성하니 싸움을 경계해야 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쇠잔했으니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논어.계씨) 늙어서 경계해야 할 것 중 가장 큰 것으로 공자는 '욕심'을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노인이 되어도 혈기가 왕성한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앞에서 이야기할 것을 포함하여 모두 경계하는 편이 낫다.

 

셋째는 "잔소리 줄이고 인정해 주기"이다. 사람에게는 '인정 욕구'가 있어서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공치사"도 그 인정 욕구 중 하나이다. (중략) 내가 인정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인정하는 것은 순리이다. 특히 어른 대접을 받기 위해 후배들에게 곧잘 훈계를 하게 되는데, 후배에게 그 말이 들어갈 리 만무하다. 더구나 이만큼 살면서 알게 된 진리 중의 하나가 사람은 남의 말로 인해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 아니던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늙는 것도 쾌사>라는 시를 여섯 수나 지어서 늙음이 가져다 주는 뜻밖의 선물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대머리가 되었으나 본디 군더더기인 머리칼을 버리고 나니 시원하여 좋고, 이가 빠졌으나 이제 치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좋고, 귀가 잘 안 들리나 듣기 싫은 세상 소리로부터 멀어져 좋고, 눈이 나빠졌으나 이제 그 핑계로 골치 아픈 공부를 게을리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유쾌한 역발상인가! 젊어서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소중히 사색해보는 시간을 종종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글/ 이주해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