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에 갔던 영남 작약밭 풍경이다.
우연하게 작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듣고 올해는 가 봐야지 벼르다가 다행히 가게 되었다.
절정의 작약꽃밭에다 바다 옆이라서 아름다웠다.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 넓고 좋은 곳도 많지만 바다 정원을 끼고 있어서 특별했다.
마을과 뚝 떨어져서 건물이라고는 기도원인가로 보이는 하나밖에 없었지만 거기까지 간 보람이 있었다.
고흥은 생각보다 넓은 땅이다.
오래 전에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이곳에서 10개월간 강사한 적이 있다.
2학년 담임이었다.
원래 담임이신 윤**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5월 1일부터 이듬해 2월 말일까지 강사 생활을 했다.
나보다 2살 어린 유치원 선생님과 관사에서 살았다.
나무를 때서 난방을 하던 교실이었다.
나무는 금방 떨어져 버렸고, 얇은 유리창은 쉴새없이 덜커덩거렸다.
아이들 가고 남은 교실에서 문서 작성을 하고 있으면 입김 나오는 게 눈에 보였다.
손이 곱아서 글씨가 잘 써지지도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쓰던 캐니넷 안에는 술병이 가득했다.
코찔찔이 영한이를 열심히 가르쳤지만 아이는 한글을 떼지 못한 채 3학년이 되었다.
그때는 그 아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 아이에게 맞는 눈높이 교육을 시킬 수 없었음을.
미안하다. 영한아.
퇴근 이후에 유치원 선생님과 고흥 읍내에 나가서 장을 구경했다.
저녁 급하게 먹고 7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관사에 내리면 8시가 채 되지 않았다.
차 시간이 안 맞아서 영화를 보거나 탁구 한 판 칠 수도 없었다.
10월 어느 날은 직원 여행으로 제주도에 놀러갔다.
산굼부리에서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었던 일이 기억난다.
몇 년 전 가 본 그곳은 폐교가 되어 있었다.
청춘의 한때 잠시 머문 곳이지만 문 닫은 학교를 보는 건 서글픈 일이었다.
그 당시 고흥의 초등학교가 75개나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겨우 17개가 명맥을 유지 중이다.
그나마 두 곳을 빼고는 모두 1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이다.
고흥이 인구소멸 1순위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이가 귀한 곳.
아이 울음소리가 듣기 힘든 곳.
그러나 풍부한 먹거리에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
한하운의 시가 생각나는 소록도
우주의 꿈을 꾸는 나로도
미술관 연홍도와 에베레스트와 감히 비교하는 쑥섬(애도)
멀고 멀지만 한 번쯤 마음 내어 와 볼만한 멋진 곳, 바로 고흥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