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눈이 왔다.
첫 눈치곤 푸지게 내렸다.
이런 눈을 본 게 얼마만인지, 반갑다. 눈아!
설마. .
워낙 눈이 내리지 않는 지방이기에 쌓일 거라고 생각도 안했다.
출근할 때는 조금 흩날리다가 금세 멎었기에 그럴 줄 알았다.
10시가 넘어서자 조금씩 쌓이더니 순식간에 운동장을 다 덮어 버렸다.
이번주엔 원격수업이기에 이렇게 눈이 왔는데도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다.
학생 한 명의 코로나 확진으로 전교생과 교직원 모두가 전수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더 이상의 확진자는 없으나 학교는 이번 주 내내 문을 닫았다.
멀다고 생각했던 코로나가 우리의 턱 밑까지 추격하는 모양새다.
무섭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몇 년만에 눈이 푸지게 내려 쌓였는데, 운동장은 텅 비었다.
뒤뜰로 가 보았다.
차량 위에도 나무 가지에도 눈이 쌓였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 위를 걸어본다.
조금 미끄럽긴 하지만 설레는 이 기분을 버릴 순 없다.
좋다, 좋다, 참 좋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시끄럽던 그네도 오늘은 손님이 없다.
열대지방에서 사는 기린과 호랑이는 이 추운 데 입이 안 돌아갔으려나~~
뒤늦게 선생님과 유치원 아이, 둘이서 눈사람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동심이 살아있는 선생님이 멋지다.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가 만든 눈사람~
눈사람 이름도 지었단다.
올라프(Olaf)
<겨울왕국>에서 엘사의 마법으로 생명을 얻는 꼬마 눈사람을 말한다.
머리와 몸이 분리될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여름날의 따뜻한 바람과 햇빛을 꿈꾸는 눈사람이다.
아이가 이름을 말해줄 때 불행히도 나는 누군지 몰랐다.
이름을 검색하여 찾아보고 안 사실이다. ㅎㅎ
이럴 때 나는 세대차이를 어쩔 수 없나보다.
<겨울왕국>을 보았는데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ㅠ
학교에 있는 여러 가지 동물 조형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곰도 눈을 맞고 있다.
나무 뒤에 숨어서 부끄러운 듯 숨어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는 동물이다.
오늘도 여전히 눈을 맞고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만 골라서 빗질을 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선생님이 참 고맙다.
점심 먹고 나자 햇님이 나왔고, 한 시간도 안돼서 눈은 사라졌다.
빗질을 굳이 할 필요가 없으리만치 구석구석 다 녹아 버렸다.
2020년을 보내는 하느님의 선물처럼 푸진 눈 덕분에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