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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든 무로 '무차' 만들기

 지난 주말 무차를 만들었다.

'무차'라고 이름붙이는 게 맞나?

'무말랭이'라고 해야 하나????


사연은 이렇다.

지난 가을 비료 한 번 안 주고 무농약으로 재배한 무가 바람이 다 들었다.

수확 후 바람 안들어가게 비닐로 꽁꽁 싸매서 보관하면 저온창고가 없다 하더라도

봄까지 거뜬히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건만

나는 무거워서 하지 못했고,

남편은 이 일 저 일 처리하느라 바빠서 하지 못했었다.

창고에 방치한 채로 여러 날 두다가 한차례의 추위가 엄습한 이후 열어봤더니

아니나다를까 일부는 얼어 있었다.

그때서야 비닐도 아닌 박스에 두 겹 싸서 보관했더니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바람든 것 투성이다.


농사많이 지어본 학교 선생님이 무차를 만들면 아무 이상 없다기에

따뜻했던 지난 주말 무차만들기에 도전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1센티 조금 넘은 간격으로 썰어 건조기에다 말리라고 한다.

건조기는 없고

무언가를 말리기에는 아직 봄햇살은 여리고

-무엇보다 날마다 미세먼지의 횡포로 해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우리 나라 왜 이럴까?

파란 하늘을 자랑하던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날마다 쏟아내는 '미세먼지저감조치'가 무색하리만치 맑은 날 보기가 어려워졌다.

ㅠㅠ -

과연 잘 말라서 무차까지 이를 수 있을까?


무는 어떤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다.

겨울이면 굴과 버무려 만든 깎두기는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쇠고기나 굴을 넣어 국을 끓이면 그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고등어나 꽁치, 혹은 명태코다리 아래 무를 깔고 간장과 마늘로 양념하여 은근한 불로

오래 졸인 조림은 또 얼마나 맛있는가?



 

 

 

 

바람든 무는 맛이 없다.

수분이 빠져 퍼석거린다.

국에 넣어도 맛이 없고, 무채나 겉절이는 꿈도 못 꾼다.

겉보기엔 아무 이상도 없이  통통하고 매끈하게 보이나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사람도 그렇다.

겉멋에 치중하는 사람이 있고

겉은 비록 허술하지만 알면 알수록 진국인 사람도 있다.

겉으로 봐서는 구분 안되는 무처럼 사람 속도 겉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가슴 속에 자물쇠가 달려 속을 열어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속이 꽉 찬 무처럼 알면 알수록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가치를 잃어버린 바람든 무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50여개쯤 되는 무를 씻어서 썰어 말리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시간이 헛된 시간이 되지 않도록 부디 보성의 햇살과 바람이

무차를 잘 만들어두었기를.

일주일 후에 가 보았을 때 꾸들꾸들 잘 말라있기를 빌어본다.



2019. 03.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