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형님이 전화를 하셨다. 남편의 바로 위 두살 터울의 누나. 나이로는 두 살 이지만 겨우 13개월 차이라 연년생처럼 자란 남매. 시어머니는 딸 셋 중 이 딸은 가장 사랑했다고 했다. 교통사고 후 거의 8년간 임신이 안되어서 위로 세 아이 있으니 다행이다. 더 이상 임신이 안되는 몸이구나. 포기하며 살았는데 나이 마흔에 기적처럼 자연임신이 되어 낳게 된 딸이 바로 이 형님이라고 하셨다. 하여 무려 마흔 둘에 낳은 당신의 막내아들인 내 남편보다는 여자로서의 자격을 다시 부여해서 너무나 기뻤던 셋째형님을 키우는 동안 더 사랑했다고 하셨다.
그 형님은 캠퍼스커플이지만 결혼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혼을 하셨고, 그때 형님의 나이는 채 마흔이 되기 전이었다.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그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바로 직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이후 형님은 학원 강사, 작은 영어학원, 꽃가게 운영, 개인 과외 등으로 힘겹게 두 아이를 대학졸업까지 시켰다. 원래가 무능했던 남편으로부터 아이들 교육비나 생활비는 한 푼도 조력받지 못하면서 말이다. 여자 혼자 살기에 세상은 녹록치 않았기에 간혹은 친정식구들인 형제간들의 도움을 받을 때도 많았다.
형님은 올해 사위를 볼 예정이다. 지난 3월 상견례까지 마쳤다. 부모 이혼 후 초등학교 1학년 입학했던 딸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았으나 고생하는 엄마의 맘을 잘 헤아리는 착한 딸로 커서 좋은 직장도 얻고 또 좋은 남자와 오래 사귀어 결혼에까지 이를 예정이다. 이혼하던 해 서른여덟이던 형님은 이제 예순을 코 앞에 두었다. 2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아왔으니 말하지 않아도 그간의 세월이 얼마나 외롭게 힘들었을까.......좋은 시절 다 보내고 혼자 늙어버린 형님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된다.
오늘은 그 형님이 선물을 가져왔다. 직장 여성인 나를 위해 손가방을, 남편을 위해 닥스 상품권을. 그간의 수고로움에 감사하는 의미로 지난번 딸과 함께 프랑스 갔을 때 사 온 손가방이라고 했다. 무얼 한게 있다고...조카의 마음씀이 고마워서 가슴이 뭉클했다.
조카는 내 큰 딸아이와 동갑이다. 내 큰 딸은 아직도 공부하느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고생하는 엄마 생각해서 일찍 자리잡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말이다. 조카는 어찌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숙모인 나는 그 아이의 그런 성장을 바라보는 기쁨이 컸다. 키크고 이쁘게 잘 커서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 단번에 합격한 것도 자랑스러웠고, 듬직한 남자친구랑 상견례하는 것도 꼭 내 딸이 그런 것처럼 대견했다.
내가 섬에 근무할 때 일이다. IMF로 힘들어진 정부는 100명 이하의 작은 학교를 경제논리를 내세워 강제 통폐합을 했었다. 부족한 교사수를 메우기 위해 학생들을 2부복식, 3부복식까지 시킨 적도 있었다.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이 각기 다른 3개 학년을 가르쳐야 하다니. 그건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교육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탁상공론>의 경제논리로 만든 폭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18년 전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났었다.
나를 따라서 작은 섬마을 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들에게 복식교육을 시키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도시에서 다니는 셋째형님의 아들과 딸을 몇 달 동안 전학을 시켜 함께 살았었다. 주말에 형님께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가 월요일 이른 새벽 다시 섬에 들어가기 위하여 데리러가면 조카는 엄마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계속 울었었다. 숙모가 아무리 잘해줘도 엄마만 했을까...잘해주기는 커녕 무뚝뚝한 숙모인데....... 한편으론 미안하고 한편으론 짠했던 그 아이가 자라 결혼을 앞두고 이런 선물을 보내왔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으랴.
선물이라는 게 받아서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베푼 작은 친절을 잊지않고 기억해준 조카의 마음씀이 너무 고맙다. 이제는 살만해져서 역시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일 년이면 몇 번씩 해외여행을 나갈 정도의 여유를 누리고 사는 셋째형님. 그간의 노고가 이런 식이나마 보상을 받는 듯 해 내가 다 뿌듯하다. 역시 세상은 살아볼 일이다.
OO아. 오늘 엄마 편에 보내준 가방 잘 받았어. 아주 맘에 들어. 어려움 속에서도 의젓하게 잘 자라서 대기업에 취직도 하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데.... 내 딸 아니지만 내 딸 이상으로 대견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선물까지 받고 보니 고맙다. 착하게 잘 자라준 것도, 이쁘고 건강하게 커 준것도, 작은 도움을 기억하여 선물할 줄 아는 니 마음씀도 너무 고맙고 기쁘구나. 항상 너를 응원할게. 건강하게 직장인으로 사랑받으며 이 숙모처럼 30년 이상 근속하길 바랄게. 행복하렴!!!
감사해요. 숙모! 그동안 주신 사랑에 보답해드리기엔 소소하지만 여름에 산뜻하게 가볍게 들고 다니셔요! 항상 건강하시고, 남은 주말 잘 보내시구요. 감사합니다.^^
'일상의 풍경 > 일상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의 훈련소 입대 (0) | 2017.07.12 |
---|---|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20170617) (0) | 2017.06.25 |
20170603 포르테 디 콰토르 공연 관람 (0) | 2017.06.08 |
(담양여행) 아름다운 초록의 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0) | 2017.05.10 |
그녀, 김봉자! (0) | 2017.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