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있었다. 광양문화연구회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광양문화연구회는 우리 직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동안 광양의 유적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현장답사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러던 차 2014년부터 광양의 문화인물이라는 이름의 인터뷰를 하고 주간으로 나오는 광양신문에 연재를 하기로 했다. 일 년 2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총 54명을 인터뷰하였다. 책을 내자는 말이 간간히 있었지만 다들 전업작가가 아니고 별도의 직업으로 바쁜 생활인이다 보니 책 내자는 말은 흐지부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2년이나 지난 작년 가을 책을 내자는 말이 다시 나오게 되었고 출판사-서울 북 셀프-까지 섭외하게 되었다.
북셀프 사장을 직접 만나 책 의뢰한 게 작년 11월 초, 12월말이면 책이 나올 줄 알았다. 시의성이 떨어져선지 서두는 사람도 없고 출판사에서 연락오기만 기다렸더니 결국은 해를 넘겨서야 교정을 하나 둘 보게 되었다. 최종교정은 3월 20일 무렵에야 끝났고, 열흘정도의 텀을 두고 4월 7일 출판기념회 날까지 받아두었다. 초대장을 만들고 발송까지 마쳤는데 이번에는 인쇄소의 잘못으로 책이 발송되지 않았다.(쪽수가 뒤죽박죽이 되었다고.....ㅠㅠㅠ) 할 수없이 다시 여기저기 출판기념회 연기 안내장을 돌렸고, 다시 날을 잡은 것이 4월 27일이었다.
사람들이 순하기도 하지. 말을 꺼낸지 6개월이 넘어서야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왔는데도 닥달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광양문화연구회에서 글쓰기에 관심있는 7명의 필자가 51명의 대담자를 만나 인터뷰 한 내용이 실린 이 책의 공동저자 7명은 일단은 <순하고 착한 사람>이 분명하다. ㅎㅎ
어제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광양, 사람의 향기> 책 출판기념회가 열린 날이다. 역할을 분담한다고는 했지만 다들 바쁘기도 했고 이런 형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준비의 많은 부분을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식순써오기, 저자 삼각대, 대담자 이름표 쓰기, 식탁보 챙기기, 책판매 문구 만들기, 방명록 준비하기, 다과준비하기, 접시 이쑤시개 각종 소품 챙기기 등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격식을 갖춘 행사인데 이왕이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다행히도 다도를 체계적으로 배운 우리 학교 보건선생님이 이렇게 이쁜 다과상을 차려주셨다. 레이스의 고운 꽃무늬가 아름다운 식탁보는 물론 은으로 만든 다기, 주석으로 만든 이쑤시개, 곶감 키위 금귤등을 이용하여 만든 다식 등이 보기만 해도 우아하다. 직접 만든 긴 사각형의 도자기 꽃병에 화사한 철쭉을 꽂은 저 안목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품격이 느껴진다. 황금같은 금요일 저녁에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신 보건 언니가 너무나 고맙다. 또 정작 준비해야 할 나는 출장가고 없는데 과일을 씩고 포장하여 시간을 벌어준 동료 선생님들께도 고맙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시간 안에 준비하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문화연구회의 회장님 말씀.
필자 중 한 명. 회장님과 더불어 퇴직 이후 더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생님이시다. 각자의 대담자를 필자가 소개하고 대담자는 짧게나마 한 마디씩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단아하고 고운 모습처럼 글도 시처럼 아름답게 글을 쓰는 은주언니!
이 분은 내가 인터뷰한 <태인큰줄다리보존회 회장>인 김영웅 선생이다. 선생은 별다른 지원금도 없고 사람을 모으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에서 전해오는 큰줄다리기를 20년 가까이 해 오는 분이다. 이 날 시간맞춰 가장 먼저 와주셨고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신 너무나 고마운 분이시다. 아참, 책도 여러 권 사 주셨다는.....ㅎㅎ
퇴직한 지 7년 이상이 지나 일흔 가까이 되신 안영춘 선생이시다. 진월에서 태어났고 진월에서만 초등교사 생활을 십 여년 이상 하셨고 지금도 진월에서 사시는 고향사랑이 남다른 분이시다. 많은 봉사활동을 하시지만 특히 폐교 위기에 놓인 진월중학교에서 야구부를 만들고 후원회장을 맡아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를 살린 장본인이시다. 울먹이며 소회를 밝히니 듣는 나도 울컥~~~
선량한 웃음만큼이나 삶 자체도 모범이 되신 이재민 교장선생님. 혁신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성공적인 4년을 마무리하고 남은 6개월을 다시 아이들 속에서 평교사로 정년퇴직한 우리 시대 참스승. 이 분을 진즉 만났더라면 내 삶도 지금보다 좀 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인터뷰하면서 많이 아쉬웠던 부분이다.
노동운동가 민점기 선생님. 이 날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조동화 시인의 <나하나 꽃 피어> 시를 낭송해주셨다.
팽기원 선생님이 지도하는 광양제철초 오케스트라 아이들이 찬조출연하여 오보에 연주.
대담자 중 한 명인 세상이 리듬이다의 주인공 이헌구 선생.
이 헌구 선생과 함께 자리하여 클래식 키타를 연주해주신 오장근 님!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출판기념회가 무사히 끝났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힘들기도 했지만 신선한 경험이라 재밌기도 했다. 오늘은 7명의 필자가 공동으로 책을 냈지만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그럴듯한 책을 내 보리라 다짐해본다. 책의 홍수시대, 또 하나의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그때까지 절차탁마 노력해야겠지?
광양은 장흥이나 강진 혹은 진도처럼 문화가 풍부한 지역이 아니다. 한때는 '죽은 광양사람 한 명이 살아있는 순천사람 셋을 이긴다' 든지 '고추가루 서 말을 먹고 뻘 속 삼십리를 기는' 광양사람으로 묘사되어 왔다. 앞으로는 남해바다가 뒤로는 1222미터의 백운산이 버티고 있어서 척박한 지형적인 요인을 극복하고자 억세고 강인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먹고 살기 바빠서 문화를 즐기거나 누릴 마음의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 문화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봤을 때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바로 문화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51명의 인터뷰 대상자가 바로 <광양문화>일 것이다. 아직은 수줍고 작은 발자욱이지만 광양문화연구회의 의미있는 일 하나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꿏밭이 되는 건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