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마술사 2017. 4. 24. 10:38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제는 참으로 황망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는  "암은 축복이다"라고 했던가? 아무리 죽음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복병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적어도 평균수명은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내일을 기약하고 한 달 후에 약속을 잡고 내년을 이야기한다. 어제처럼 가까운 사람의 예고없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전화로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잘못 들었겠거니 했다. 사고가 난 바로 그날 저녁 오후 6시 30분 무렵 그녀와 카톡을 주고 받았다. "oo샘, 학습연구년 계획서 있는 홈페이지 아세요? 알았는데 까먹었네요. 그리고 혹시 계획서 있으세요? 내년에 한 번 신청해 볼까 하고요." "주변에 학습연구년 들어간 사람이 없어서 가지고 있지는 않네요. 그러나 하고 있는 사람을 알고는 있으니 필요하면 구해줄 수는 있습니다. 월요일에요." "넵, 고맙습니다."


그랬는데 그 월요일이 되기도 전, 아니 나와 카톡을 주고 받은 그 날 밤이 지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우리 나이 50세. 주변인의 건강을 내 건강만큼 신경쓰고 관심 가져주고, 아이가 아프면 아이의 엄마한테까지 따뜻하게 전화하여 챙기던 보건교사 였다. 보건업무만 잘 하면 될 것을 교육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독서토론수업도 열정적으로 해 내던 능력있는 교사였다. 아이들 그림책 지도하기, 어린이 도서관 업무 강의 듣기, 최근에는 대학원수업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일을 능동적으로 해 내더니 하루 아침에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밝고 환한 에너지가 넘쳐서 주변인까지 즐겁게 만들던 재주가 있고, 항상 긍정의 힘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본인의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기를 좋아하던 그녀. 사진 속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는데 사방이 꽃피는 이 좋은 시절을 더 보지 못하고 그녀는 떠나버렸다.


어제 늦은 밤, 장례식장을 찾았다. 영정 사진 속 그녀는 평소 즐겨입던 빨간 외투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여 중학생이 될때까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는 그 아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상주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편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다는 우리 남편'이라고 자랑하여 우리를 어이없게 만들던 그 남편이 아들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이리 비통하고 허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는데 가족은 어이할꼬? 아들 손을 잡고 한 마디를 하는데 흐르는 눈물을 가눌 길이 없다. '돌연사'를 조심해라. 남편 술 적게 먹게 해라. 허리 쫙 펴고 다녀라. 밤에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라. 나만 만나면 하던 그 잔소리가 귀에 쟁쟁한데 그녀는 떠나버렸네. 아침 등교길을 엄마가 시켜주었다는 데 이  아들 살아가면서 엄마의 빈 자리가 얼마나 많이 느껴질까나..... 유난히, 과하게 아들을 챙기던 사람인데 아들 두고 어떻게 그 먼길을 갔을까나.....


오늘밤은 정말 힘드네. 가슴도 두근거리고 위도 아프도 잠을 이룰 수 없고~~ 봉자와의 이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구만. 너무나 허망한 봉자와의 이별~ 아무리 잊으려 해도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냥 화가 나네. 왜? 왜? 도대체 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추억을 남기고 떠난 셋째. 카스와 카톡의 사진들을 보고 또 보네.

내 건강을 걱정하고 전화로 힘을 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정작 자기에게 다가온 검은 그림자는 예견하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더 아프네.

2월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볼 걸~~ 항상 후회는 늦은 법이라던가?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바쁜 그대에게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조의편부 부탁하고 연락줘~~


선생님!

오늘은 연구학교 협의체위원계획단계 협의회가 밤 10시까지 예정되어 있어서 어젯밤 8시반쯤 조문다녀왔습니다. 연락안드리려다가 주차장에서 김oo교장선생님께 전화드리니 오신다고 하셔서 함께 다녀왔답니다.


사진 속의 봉자는 카톡사진에서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밝고 건강하기까지 하여 한 번도 이런 일 상상한 적 없어서 절을 하는데 눈물이 막 났습니다.


이뻐서 잠잘때조차 끼고 자던 아들과 이 세상에서 제일 미남이라고 사진 보여주며 자랑하던 남편이 상주가 되어 절을 받더군요. 얼이 다 빠졌더라고요. 남편이....


정작 건강이 안 좋았던 사람은 남편인가 봅니다. 봉자씨는 평소 심장이 안 좋았는데 민간요법에 의존하고 있었고, 올해부터 대학원다니고 3일 남해로 연수 다녀오고 그러면서 무리가 되었나 봅니다.


저도 늘 후배라고 생각했던 봉자씨에게 절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지요. 많이 우울하고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짧고 굵게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나는 봉자가 "봉자답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

많이 허망하여 어젯밤 저도 많이 우울했습니다. 생과사가 이렇게도 가까운건가 싶어서요. 좋은 날 서로 만나 봉자 이야기 하시게요. 몸조리 잘 하시고 힘내세요.



그녀. 김봉자!


좋은데 가서 잘 살아라.

명복을 비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당신의 선한 웃음과 맑은 피부와 아름다운 마음씨를 오래도록 기억할게.

안녕!!!